
기업지배구조 컨디션이 기업에 기회와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지배구조가 탄탄하면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등급이 우수한 기업은 기관투자자의 투자 대상에 포함된다. 반면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 대상이 된다. 지배구조가 ESG 투자와 분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최근 ESG 투자 전략이 진화하면서 기업지배구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ESG 요소를 시스템적으로 분석해 위험을 조정하는 ESG 통합(integration) 투자나 경영 참여(engagement) 투자가 주류화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특히 경영 참여형 투자전략은 ESG 규범 기반 투자나 특정 기준에 따라 기업을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스크리닝 방식과 비교해 활용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기업 변화 유도하는 연기금 ESG 투자
블랙록, 연기금 등 유니버설 오너는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등 시스템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ESG 통합과 경영 참여 투자를 이끌고 있다. 기후변화 같은 시스템적 리스크는 기업의 비즈니스가 친환경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 참여 투자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원칙)가 기반이 된다.
기업 관여 혁명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공적연금(GPIF)은 경영 참여 전략을 활용하는 대표 연기금이다. GPIF는 2017년 포트폴리오에 대한 넷제로 분석을 끝내고 2019년 기후변화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기업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이후 GPIF는 이 보고서를 계기로 경영 참여를 본격화했다.
실제 GPIF는 포트폴리오의 100%, 모든 자산군을 ESG 경영 참여 전략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는 2015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하는 등 ESG 투자와 관련한 준비를 해왔기에 가능했다. GPIF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일본 기관투자자들도 연이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며 경영 참여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캘스터스)의 ESG 투자는 유니버설 오너가 자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기업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캘스터스는 전 세계 700여 개 투자자가 함께하는 기후행동 100+(CA 100+)를 통해 기업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2021년 CA100+는 미국에 본사를 둔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 이사회를 상대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이로 인해 엑손모빌은 3명의 새로운 이사를 선출했다. 이는 미국 3대 연기금인 캘스터스의 지지에 힘입은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캘스터스는 기업 이사진을 바꾸는 등 주주 관여를 통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기후변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140여 건 중 50%에 달하는 안건에 주주권을 행사했다. 주주권 행사는 기업이 변화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기업 관여 활동 결과, 포드자동차와 제너럴 모터스는 2040년 이전까지 탄소배출이 없는 자동차를 전면 생산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는 저탄소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ESG 투자를 한다. 2050년까지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이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스코프 1(직접배출량), 스코프 2(간접배출량) 및 중대성이 있는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를 감소시키기 위한 과학 기반 목표와 이행 전략을 보유하고 있는지 검토 중이다. 포트폴리오 배출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200~250개 기업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대화하고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기후변화와 관련해 기업과 1500회 이상 미팅을 갖는 등 적극적인 경영 참여와 주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23년 9월 행동계획 발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에 원하는 바를 문서로 정리해 발표했다. 해당 문서는 기후변화 관련 기업에 대한 기대는 이사회 지배구조, 기후 관련 리스크 공시, 온실가스 정보공개, 2050년 넷제로 목표 설정, 중간목표, 전환 계획 등 6가지와 관련한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ESG 관리 소홀한 이사회, 책임 공방 빈번
기업 이사회에 ESG 경영과 관련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블루벨 주주들은 이사회가 식품 안전을 감시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3명의 소비자가 식중독 원인균인 리스테리아균으로 사망했고, 이후 리콜 진행 등으로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델라웨어주 대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이사회에서 식품 안전과 관련한 위험을 경영진으로 보고받지 못했지만 2019년 이사의감시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이사회에서 사전에 ESG 리스크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했는지에 따라 이사의감시의무 위반을 판단해온 바 있다. 2018~2019년 연이은 보잉기 추락 사태에 대해 이사의감시의무 위반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항공 안전 감시 책임을 부담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이사회에서 사이버보안 관련 잠재적 리스크를 정기적으로 보고받는 등 시스템을 마련한 사례와 관련한 주주대표소송 건에서는 이사회의 손을 들어줬다.
이 밖에도 ESG 공시의무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사회의 책임이 크게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ESG 공시 체계가 이사회 중심의 ESG 리스크 관리 강화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특히 기후 같은 특정 지속가능성 사안은 재무 연관성이 높아 법정 공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 이사회가 상당한 주의의무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김혜성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회사의 비재무 리스크와 관련해 이사의감시의무에 대한 법적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회사의 주요 ESG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가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이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업은 핵심 ESG 리스크를 점검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이사회에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추며 이에 대한 활동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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