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세계 3대 성장주 전문 주식 시장이 있다. 역사를 따지면 미국 나스닥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때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그 거래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줄을 섰다. 그중엔 대만도 있었다. 살짝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나. 2000년대 초반 코스닥시장이 정말 이랬다. 얼마나 잘나갔는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이곳으로 앞다퉈 옮기려 했고, 정부가 유가증권시장에 기업들을 묶어두려고 당근책을 내놓을 정도였다. 닷컴 붐을 타고 코스닥지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문제를 열거하면 한두 가지겠느냐마는 본질은 단순하다. 검증이 안 된 기업들을 갖다 놓고 개인들끼리 사고팔라는 식의 구조가 20년 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성장성 특례다. 2018년 도입된 이 제도는 증권사가 특정 기업에 대해 ‘성장성이 있다’고 건의하면 이를 토대로 상장시켜주는 것이다. 기술 수준이나 재무제표는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상장한 기업이 지금까지 20곳이다. 하지만 5년이 되도록 제대로 흑자를 내는 기업이 없다. 절반가량은 매년 적자 폭이 불고 있다. 어떻게 이런 기업들만 골라놨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고는 개인들에게 베팅하게 했다. 이 와중에 퇴출 비율은 세계 주요 증시에서 가장 낮다. 혹자들은 코스닥을 도박판에 비유하는데, 사실 기분 나빠해야 할 쪽은 도박이다.
최근 코스닥에 나타난 흥미로운 움직임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올해 개인의 코스닥 순매수 금액보다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개인이 코스닥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두 번째는 2~3년 전부터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자진 상장폐지 기업도 잇따라 나오고 있는 점이다. 괜찮은 기업들까지 하나둘씩 짐을 싼다는 얘기다. 코스닥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