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와 절망의 진한 철학극 '햄릿'

입력 2024-06-17 18:55   수정 2024-06-18 00:22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의 플롯은 단순하다. 덴마크 왕자 햄릿의 복수극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 클로디어스 왕을 죽인다. 작중에 대단한 사건이 팡팡 터지지도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며 작품 내내 고민만 한다. 답답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존재와 죽음에 대한 진한 고민이 담긴 철학극이다. 지난 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햄릿’은 그 매력을 가장 진득하게 보여준다.

무대는 거의 비어 있다. 반투명한 거울만 서 있다. 각 인물의 모습이 반사되기도 하고 죽은 자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유리창이 되기도 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겹쳐 보이는 장치가 된다. 의상도 무채색에 장식 하나 없다.

빈자리는 배우들의 존재감으로 채운다. 24명의 출연진 가운데는 이호재, 김무송, 박정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들의 존재감은 등장인물의 고뇌에 더욱 절실하게 빠져들게 한다.

젊은 배우들의 열연도 놀랍다. 지난 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햄릿 역을 맡은 강필석은 엄청난 대사량과 극적인 감정 연기에도 힘 빠지는 구간 없이 애절함과 분노가 객석에 전해졌다. 오필리어를 맡아 연극 무대에 데뷔한 루나가 보여준 연기도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설레는 감정에서 시작해 아버지를 잃고 광기에 빠진 폭넓은 감정 연기를 충실히 해냈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비유 가득한 대사가 휘몰아친다. 원작의 시적인 매력을 지키면서도 현대 관객의 귀에 어색하지 않게 풀어냈다. “장례식 때 준비한 고기가 식기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대사는 재치 있다. 마냥 침울하고 어둡지만 않다. 오필리어에게 사주팔자를 말하는 등 한국 관객이 반길 만한 유머가 담겨 있다.

레어티즈를 연기한 이충주와의 검술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칼을 서로 부딪치는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펜싱 경기처럼 빠르게 치고받고 스텝을 밟아 긴박했다. 개막 직후라 몇몇 동작에서 조금은 합이 어색한 장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현실적이고 느슨하지 않아 놀라웠다.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엄청난 대사량을 쏟아내 집중력이 필요한 작품. 화려하거나 긴박감 넘치지는 않지만 한 번 그 늪에 빠지면 마치 관객이 몸소 가족과 한바탕 다툰 듯 기진맥진해진다. 공연은 오는 9월 1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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