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딥페이크 합성물 사태는 기존 SNS상의 불법 유통 유포 속도를 뛰어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텔레그램에는 도시별 학교별로 함께 아는 지인을 뜻하는 ‘겹지인방’이 속속 생겨났고, 이곳에서 지인의 사진을 활용해 제작한 불법 합성물을 공유했다. 이런 겹지인방이 전국에 확산하는 데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올초 서울대판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중·고교생 사이에서 지인의 사진을 몰래 합성했다가 적발된 사건이 가끔 있었다”며 “최근 겹지인방이 생겨나며 폭발적으로 지역별, 학교별로 비슷한 방이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대응에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피해 신고 접수처를 마련했다. 여성가족부도 피해자에게 삭제 지원 및 유포 여부 모니터링, 심리상담 치료를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본격 가동했다.
10여 년 전 국내에 도입된 텔레그램은 증권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퍼지다가 일반인에게도 널리 보급됐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지난 4월 기준 30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익명성 때문에 텔레그램은 크고 작은 범죄에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0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조주빈 등 일당은 불법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한 뒤 메시지가 지워지는 비밀방을 통해 유통했다. 이 밖에 최대 규모의 마약 거래방 ‘오방’ 사건, 서울대 딥페이크 합성물 유포 사건도 텔레그램이 주된 통로였다.
경찰은 텔레그램의 비밀주의, 익명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밀방을 통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이뤄지는 범죄를 잡아내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텔레그램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2020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사업자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러나 정작 개정안에는 ‘사업자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는 텔레그램에 대한 조치는 빠져 사실상 문제를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텔레그램 수사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제 공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라며 “성범죄 등에 대한 위장 수사를 확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희원/안정훈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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