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래동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3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다. 목화밭이 많던 이곳에 방적공장이 세워지면서다. 경성방직(경방), 방림방적이 그중 일부다. 문래동이라는 이름도 전통 방직기인 ‘물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문래동에 마치코바(町工場·영세 공장)로 불리는 철공소 중심의 기계·금속 생태계가 조성된 건 1960년대 들어서다. 공장의 부품 수요가 늘자 소규모 가공 공장이 몰려들었다. 198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철거된 소공인이 가세하면서 문래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지나다니는 개들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다.제조업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문래동의 암묵지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개발 압력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계·금속 단지의 생태계는 급속도로 깨지고 있다. 구역별 재개발 사업은 이미 진행 중이다. 최근 4~5년간 문을 연 카페와 술집 등은 260곳에 이른다. 그만큼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임대료는 영세공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오버투어리즘마저 생겨나는 요즘 쇠를 깎는 기계음은 잦아들고 잔을 부딪치는 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1년 전에도 이 지면을 통해 이런 사정을 짚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 소매를 걷고 나서는 정부의 거버넌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영등포구는 기계·금속 단지 통이전을 위해 올해 초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이전 타당성 검토 용역안’을 끝냈지만 반년이 넘도록 단 한 곳의 정부 부처와도 협의한 적이 없다.
문래동은 국내에서 시제품과 소량 다품종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공대생도 시제품을 의뢰하러 이곳을 찾는다. 문래동이 사라지면 일본의 오타구나 중국 선전으로 가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아이디어도 뺏길 공산이 크다. 결국 시제품을 못 만들면 신제품 개발은 어려워진다.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정량적 비중이 작다고 방기해선 안 되는 곳이 문래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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