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역삼동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아이씨티케이(ICTK). 본사가 입주한 건물 지하에 들어섰더니 5mm 두께의 철판으로 둘러쌓인 ‘클린룸’이 나왔다. 먼지 한 톨도 허용되지 않는 이 곳에서는 보안칩마다 고유의 아이디를 부여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ICTK가 보안칩을 설계하면 이를 삼성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SK키파운드리, 대만 UMC에서 양산한다. 웨이퍼가 나오면 ICTK 본사 지하에서 후공정 작업이 진행된다. 이정원 ICTK 대표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팹리스이지만 후공정 라인까지 설치된 유일한 회사”라고 말했다.코스닥 시장 상장사인 ICTK는 보안칩 전문 팹리스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에 보안칩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회사는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시장 규모는 약 10조원인데 클린룸과 보안 설비 등 까다로운 국제 인증을 통과해야하는 등 허들이 높은 편이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ICTK만이 보안 반도체를 할 수 있는 회사로 꼽힌다. 보안칩 시장은 글로벌 대형사들의 각축전인 가운데 한국의 다윗인 ICTK가 골리앗 판에 뛰어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대표는 “기존에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하던 보안은 장벽을 높여도 계속 해킹됐다”며 “사람으로 비유하면 퍼프 기술로 나온 아이디가 지문이나 홍채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안성이 높아질수록 불편하지만 역설적으로 완벽한 보안은 편안함을 가져온다”며 “확실한 아이디를 부여하면 그 다음부터는 서로 편하게 통신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ICTK의 칩은 현재 한국전력과 LG유플러스 등에서 사용중이다. 스마트미터기, 무선공유기 등의 해킹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장비에 들어간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중 한 곳도 주요 고객사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설계자산(IP)분야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이 대표는 “머신러닝 칩이나 두뇌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중앙처리장치(CPU)와 같은 큰 칩에 저희 기술이 하나의 IP로 들어갈 수 있다"며 "그러면 직접 칩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이 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이 대표는 2013년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토종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고 싶었다”며 “반도체와 보안의 결합은 희소성 있는 영역이라 판단했다”고 돌아봤다. 부대표로 시작했지만 2018년 대표에 올랐고, 현재 최대 주주로 회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린 만큼 데이터의 무결성이나 인증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제로 트러스트’ 시대를 주도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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