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성지' 서울 성수동에 마련된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수십명이 몰렸다. 대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점심시간인데도 스마트폰으로 숏폼을 보는 대신 긴 글이 전시된 공간에서 '읽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카카오는 방문객이 글을 쓰고 싶도록 마음 먹게 만드는 것을 이번 팝업 목표로 정했다. 관람과 체험을 마치고 나오면 '작가'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시도는 제대로 통했다. 브런치스토리 팝업에선 방문객들이 장시간 진지한 모습으로 글감을 찾고 직접 책 표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간단한 체험을 거쳐 상품을 수령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반적 팝업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방문객은 이 키워드를 토대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다음 글감을 찾는 공간으로 넘어간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떠올리거나 영감을 주는 문장들, 글쓰기 요령을 안내하는 '레시피'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정문정 작가는 글쓰기 레시피 중 하나로 '아름다운 문장 수집'을 꼽았다. 정 작가는 이 레시피를 통해 "책을 읽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꼭 타이핑을 해두거나 출력을 해서 붙여둔다"며 "아름다운 글을 계속 읽고 모으면 글의 힘을 매번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기운이 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혜윤 작가는 '글로 사진 찍기'를 추천했다. 그는 "혼자 여행 다닐 때 핸드폰을 방에 두고 나간 적이 있다"며 "숙소 앞 광장에서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눈에 보이는 장면들을 사진을 찍듯이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글감을 최대한 많이 떠올릴 수 있도록 문장에서 얻은 영감을 활용해 마인드맵을 펼칠 공간도 조성됐다. 매일매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한 달치 글감도 달력 형태로 함께 전시됐다.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애용하는 물품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작가는 글을 쓰기 전 주변을 환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싱잉볼과 스프레이를 전시했다.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놨다. 그는 아이폰 속 메모장을 '냉장고'로 비유하면서 창작활동 필수품이라고 소개했다.

카카오는 방문객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작가의 여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성진 카카오 스토리서비스팀장은 "팝업에서 나갈 때면 작가가 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소한 일상의 순간과 작은 깨달음 속에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해 왔던 브런치스토리의 기획 의도를 팝업으로 구현한 것이다.
숏폼이 범람하는 시대지만 긴 글의 깊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팝업을 찾은 방문객 중엔 예비작가뿐 아니라 대학생, 관광객, 직장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글을 읽고 쓰는 가장 익숙한 경험을 공유했다.
카카오는 숏폼 시대에도 글만이 갖는 경쟁력을 주목하고 있다. 황수영 카카오 브런치기획 매니저는 "글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는 중요한 도구"라며 "숏폼의 시대에도 최근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깊이 사유하고 글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표현하면서 '창작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브런치스토리팀은 "글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쉽지만은 않지만 그만큼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이라며 "속도와 규모가 강조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브런치스토리로 책을 낸 황보름 작가도 글의 힘을 강조했다. 황 작가는 팝업을 찾아 "숏폼이 주는 자극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들지만 글을 읽는 것엔 고통도 불안도 따르지 않는다"며 "10년간 작가들을 지지해주고 지원해주는 플랫폼이 있다는 자체가 고맙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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