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작년 말 한 국제 행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규제받지 않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은 이름과 달리 불안정(unstable)하다.” 달러 가치와 1 대 1로 연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무역 거래에 쓰이는 등 금융·외환시장을 파고들면서 기존 화폐를 구축(驅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 총재의 언급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내용 자체가 어려운 데다 스테이블 코인 문제가 한국과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 얘기라고 여겨서다.가장 주목할 대목은 스테이블 코인이 세계 각국의 무역 거래 결제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닌 이유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한국 무역 거래 규모는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법인 계좌가 허용된 건 아니지만, 소규모 무역 거래를 하는 기업인 및 개인사업자가 개인 명의로 계좌를 터 스테이블 코인으로 수출·입 대금을 결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결제 절차와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다. 정부 안팎에선 한국 무역 거래의 10%가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뤄진다는 추정까지 나올 정도다(기자도 믿긴 어렵지만 정부 당국자의 말이 그렇다).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는 도박이고, 거래소를 폐쇄하는 게 목표”라던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시절(2018년)의 ‘쌍팔년도 도그마’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여러 선진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와 법인의 코인 계좌 등을 허용하는 추세다.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무역 거래 관련 규제도 마련 중이다. 이 시대 또 하나의 자산으로 코인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범정부 차원의 규제와 중장기 대응 방안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 넋 놓고 있다가는 꼬리(코인)가 몸통(자본·외환시장)을 흔들어 넘어질 수 있다. 미적거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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