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퍼즐을 완성한 K컬처, 다음 걸음은? [한국 15대 산업 경쟁력 리포트-문화산업]

입력 2024-11-07 15:52   수정 2024-11-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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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백범일지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글을 썼다. 신념을 지키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그 험난한 시절 ‘높은 문화의 힘’을 생각하고 주창한 김구 선생의 혜안은 오늘날까지도 큰 가르침과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K컬처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 순간, 문화의 힘과 영향력을 절감하게 된다. 1990년대 말 K팝, K드라마에서 시작된 K컬처 열풍은 오늘날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K무비, K클래식, K아트에 이어 K문학에까지 이르렀다. 현재도 놀라운 광경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세계적 팝 가수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노래 ‘아파트’는 스포티파이 등 국내외 주요 차트를 휩쓸고 있다. 한강 작가는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이라는 세계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그렇게 마침내 커다란 K컬처의 퍼즐이 완성됐다. 김구 선생의 염원대로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문화강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퍼즐의 조각조각이 정교하게 다 맞춰진 K컬처는 전 세계 시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그리고 멈추지 않고 더욱 나아가기 위해 이후엔 어떤 걸음을 내디뎌야 할까.

전 세계 대중문화-예술 시장을 석권하다


한류는 그동안 수많은 영광의 순간과 마주했다. 하지만 어딘가 쉽게 채워지기 힘든 빈틈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학은 그런 장르 중 하나였다. 장르 특유의 장벽이 높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긴 어려워 보였다. 문학은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보편적 가치에 대한 묵직한 고뇌를 담고 있다. 이를 자국의 언어로 빼곡하게 긴 분량으로 적힌 텍스트로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 정서와 가치를 여실히 전달하고 나아가 큰 감동까지 선사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 장벽을 깨고 K문학은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며 K컬처 역사상 최고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았다.

이를 기점으로 크게 둘로 나눠져 있던 K컬처의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K팝, K드라마, K무비와 같은 대중문화의 영역이다. 대중문화의 특성은 ‘일상’,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로 축약된다. 소소하고 재밌는 소재로 다수가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접근하고 감상할 수 있는 분야에 해당한다. K컬처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대형 아티스트와 히트작들을 줄줄이 탄생시키며 글로벌 대중문화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오늘날엔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시시각각 소비를 할 정도로 더욱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나아가 예술의 영역에서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으며 K컬처의 위상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문화예술에서 대중문화가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과 연결된다면 클래식,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은 숭고한 미적 가치의 실현, 인간의 깊은 지적·정신적 활동과 연결된다. 감각, 감성, 지식, 지혜가 총망라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K컬처는 이 분야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내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2022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북미 최고 권위의 콩쿠르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에 우승을 차지하며 K클래식 열풍을 이끌었다. 이 대회의 60년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의 우승자였다. 미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정면 외벽엔 설치 미술가인 이불 작가의 조각 작품 4점이 전시돼 큰 화제가 됐다. 메트의 ‘얼굴’에 해당하는 공간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 조각과 같았던 문학에서도 뛰어난 성과가 나타나며 K컬처는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산업적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주요산업동향지표’에 따르면 예술·스포츠·여가 분야의 생산지수는 다른 분야에 비해 압도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생산지수를 100으로 잡았을 때 2023년 생산지수는 177.3에 달했다. 서비스업 가운데 증가폭이 가장 크며 제조업이나 전 산업 등의 증가폭도 훌쩍 뛰어넘었다.

문화예술의 힘은 곧 국력과도 연결된다. 기름지고 비옥한 토양 위에서 크고 달콤한 열매들이 열리는 법이니까. 앞서 전성기를 누렸던 프랑스, 일본 등도 그랬다. 프랑스는 영화, 샹송, 미술, 패션 등을 꽃피웠으며 일본은 J팝, 영화, 만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왔다. 그리고 한국 역시 경제 발전 등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며 다채로운 문화예술의 열매를 맺게 됐다.

장르별 연쇄작용으로 큰 시너지도 일어나고 있다. 일종의 ‘K프리미엄’이 붙고 있는 셈이다.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얻자 많은 사람들이 K컬처의 정점을 얘기하며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물론 여러 장르에 걸쳐 사랑을 받게 됐다. 한국 아티스트와 작품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욱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 경향이 생긴 덕분이다. 미국 AP통신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과 영향력을 반영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같은 K컬처만의 남다른 경쟁력엔 한국 특유의 역사, 이에 따른 감정적 역동성을 꼽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과거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의 흥행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한국전쟁, 군부독재, 경제 변화, 민주주의로의 전환 등 파란만장한 한국의 역사 덕분”이라고 답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 무지개 같은 다채로운 감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그 감정을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작품들도 탄생하게 됐다.

K컬처의 100년, 그 담대한 미래와 함께


그렇다면 앞으로는 K컬처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문화강국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인류 전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성’을 강조하는 작품들로 큰 호평을 받았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이 시대의 양극화 현상을, 한강 작가의 소설들은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하며 통렬하고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제 K컬처는 미래에 대해서도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환경, 기후변화, 자원 고갈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거나 미래에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미 한국의 여러 SF영화, SF소설 등이 나오고 있긴 하다. 여기서 나아가 더욱 새로운 예언의 조각들을 만들어내고 담대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산업적으로는 국내 시장이 직면한 불안 요인들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현재 시장에선 캐스팅 비용이 치솟는 등 콘텐츠 제작비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고도 수익성은 악화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빛이 강해지며 그림자도 길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그림자가 더 길고 짙어지기 전에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한강 작가는 2019년 노르웨이 미래도서관의 숲에서 100년 후 출간될 미공개 원고를 미래도서관 사업의 주최 측에 전달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100년 동안 매년 작가 한 명의 작품을 받아 2114년에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컬처가 가야 할 길은 당시 한강 작가가 한 얘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가 전달한 원고는 ‘사랑하는 아들에게’란 제목으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내 원고가 이 숲과 결혼하는 것 같았고, 또는 바라건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작은 장례식 같았고,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세기의 긴 잠을 위한 자장가 같았다.”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는 결혼식 같고, 현세를 정리하고 다음 세계에 대한 애틋한 희망을 담은 장례식 같으며, 대지를 어루만지듯 모든 것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자장가 같은 작품. 이를 만드는 창작자의 소중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K컬처는 100년의 시간과 함께 흐르며 찬란히 빛나고 있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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