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04일 15:2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롯데그룹에서 구조조정, 매각 같은 말은 금기어입니다. 일부 임원들이 자산을 팔자고 나섰다가 다음 인사에서 자리가 없어졌던 사례도 부지기수입니다."
롯데그룹에 정통한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롯데의 구조조정이 더뎌진 배경으로 의사결정 체계의 미비를 꼽았다. 2~3년 전부터 여러 비주력 계열사들이 일찌감치 매각 대상에 올라 내부적으로 실무진 검토까지 끝났는데도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사례가 수두룩했다는 푸념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최고경영진이 책임지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직언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신 회장은 올해 초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사업에 집중하고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매각하겠다”며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내비쳤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와도 굵직한 자산매각 소식은 들리지 않아왔다. 주력인 유통·화학 부문의 부진과 롯데건설의 부실 확산 가능성은 올 들어 이어진 그룹의 고질적 문제였다.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가 올해 3월 투자은행(IB) 및 사모펀드(PEF) 전문가 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SK그룹(48명)에 이어 롯데(27명)가 올해 가장 부지런히 M&A 시장에 뛰어들 것을 예상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SK그룹이 리밸런싱을 내걸고 SK이노베이션과 SK E&S간 합병, SK스페셜티 매각 등 다수의 M&A로 위기설을 잠재운 것과 달리 시장에서 롯데그룹의 행보는 잠잠했다.
롯데그룹의 자문 경험이 있는 다수의 IB들은 그룹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적기 구조조정에 실패할 것으로 진단했다. 한 글로벌 IB 뱅커는 "롯데그룹은 항상 IB들이 먼저 가격과 복수의 인수 후보군까지 만들어서 제안해와야 매각을 검토해보겠다고 한다"며 "하지만 고생해서 제안을 올려도 윗선에 보고조차 못하고 묵히는 사례가 많아 영양가 없는 고객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선대 회장 시기엔 단 한번도 없었던 구조조정을 자신이 경영을 총괄하는 시기에 처음으로 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수년 전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주장했던 인사가 내부 감사까지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임원들이 몸을 사리는 문화가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연말부터 롯데케미칼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가 증폭돼 자본시장에 번지자 사실상 상시 매물이었던 롯데렌탈을 시작으로 현금화 행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매각 타이밍이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오히려 부추기면서 최악의 타이밍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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