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으로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꼽히는 약은 150개 안팎이다.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제약시장에서 변방으로 취급받던 한국에서도 연매출 1조원의 블록버스터가 올해 말 탄생한다. 1897년 동화약품이 한국 제약산업의 문을 연 지 120여 년 만의 일이다. 셀트리온이라는 회사의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한 단계 ‘점프’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램시마’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대 출신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제약·바이오가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2002년 셀트리온을 세웠다. 당시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터라 투자금도, 자본도 부족해 일단 위탁생산(CMO)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들의 특허가 곧 만료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았다. 국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산업의 시작점이다.셀트리온은 2006년 사업 방향을 과감히 틀어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정맥주사 제형)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바이오시밀러가 없던 때여서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 약과 효능이 같겠느냐’ ‘경험도 없는 회사가 글로벌 임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2012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2013년 유럽의약품청(EMA),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차례로 받아내며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 단백질 기반 바이오시밀러의 탄생을 알렸다.
한 병당 170만원 남짓하던 치료제를 30%가량 저렴하게 내놓자 전 세계 의사와 환자들이 찾기 시작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화이자, 산도즈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지형도 바꿔놨다. 제네릭에만 의존하던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고 바이오벤처 창업도 크게 늘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와 비슷한 사업구조 모델을 갖추게 됐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블록버스터에서 벌어들인 매출로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허가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미국 MSD, 화이자, 일본 다이이찌산쿄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사업 구조다. 실제로 램시마로 구축한 선순환 모델을 기반으로 셀트리온은 신약 개발사로 변신 중이다. 5종의 바이오시밀러도 추가로 승인받을 예정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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