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은 먼저 중앙정부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대학 등 비영리법인의 실명 계좌부터(1단계) 열어줄 방침이다. 이미 검찰과 국세청은 몰수·추징 가상자산 처분용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은 기부받은 가상자산을 지갑에 보유하고 있지만, 원화계좌가 없어 현금화하지 못한다.
예컨대 서울대는 2022년 게임회사 위메이드로부터 기부받은 1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 위믹스를 바꿔 학교 재정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서울대는 여러 차례 교육부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기부받은 위믹스를 현금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금융당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대가 보유한 위믹스 가치는 8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2단계로 가상자산거래소 등 관련 사업자의 원화계좌 개설도 허용해줄 방침이다. 가상자산 사업자의 고유 계좌 개설 허용을 통해 관련 산업 고도화를 꾀한다는 게 당국의 구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자산산업을 육성하고 감독 실효성을 높이려면 주식이나 채권처럼 발행, 상장, 중개, 수탁 등 업무 세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반 기업(3단계), 금융회사(4·5단계)의 법인 계좌 허용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상장사는 자본금의 일정 비율까지만 보유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두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트코인 테마주’가 형성되는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 기업과 금융사에 계좌 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는 유지하기로 했다. 법인 전체에 가상자산 거래 계좌를 허용하기 위한 세부적인 규정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소의 리스크 관리 및 책임, 불공정행위 처벌에만 국한돼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투자 외에 커스터디(수탁) 등 관련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으로의 ‘머니 무브’(자금 이동)를 경계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형주의 부진과 트럼프 리스크 등으로 국내 증시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반 법인에 암호화폐 투자까지 허용하면 자금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조미현/강현우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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