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09일 14:1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HL그룹(옛 한라그룹)이 정몽원 회장의 자녀가 세운 사모펀드(PEF) 로터스PE에 회삿돈 2170억원을 지원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로터스PE는 HL그룹 자금으로 투자에 나섰다가 4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내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HL홀딩스가 로터스PE와의 특수관계를 숨겨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열사를 통해 우회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특수관계인 공시 의무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몽원 회장의 장녀 정지연 씨와 차녀 정지수 씨가 설립한 로터스PE는 2170억원의 투자금 중 평가 손실액이 436억원에 달한다. 이 PEF 운용사는 공동운용사(GP)로 펀드를 조성해 더블유씨피(WCP)와 한국자산평가, 우성플라테크, 윌비에스엔티 등 4곳에 투자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한국자산평가에 340억원을 투자해 두 배 수준인 600억원의 수익을 거뒀지만 더블유씨피 단일 종목에 1000억원을 투자했다가 800억원 가까운 평가 손실을 냈다.
HL홀딩스는 2021년부터 계열사(HL D&I·HL위코)를 활용해 자기자본 18%에 달하는 회삿돈 2170억원을 로터스PE에 흘러가게 했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1830억원을 지원받은 HL위코는 노앤파트너스가 2021년에 조성한 ‘넥스트레벨제1호’에 1000억원(지분 75.64%)을 출자했다. 로터스PE가 공동운용사로 있는 펀드로, 당시 더블유씨피 주식 169만6120주를 취득해 지금까지 한 주도 팔지않고 보유하고 있다. 나머진 830억원은 로터스PE가 공동운용사로 있는 클로버와 엘케이디1호 펀드에 투자했다. 건설 계열사 HL D&I도 지주사로 자금을 지원받아 로터스PE가 공동운용사로 있는 PEF에 투자했다. 로터스PE는 HL그룹 회삿돈을 운용하면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성과보수는 챙겼지만…투자 위험은 떠넘겨
더블유씨피에 투자한 펀드 손실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PE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는 와중에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았다. 씨에스에프에프투자조합 등 다른 PEF들이 더블유씨피 주가가 급락하자 투자금 회수에 나선 것과는 대비된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로터스PE가 제대로된 운용 인력과 능력을 갖춘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서 ”더블유씨피 투자한 펀드에서 대규모 손실 확정되면 그 피해는 자금을 지원한 HL홀딩스의 주주들이 짊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투자 손실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더블유씨피 주가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등의 여파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다. 공모가 6만원에 상장한 더블유씨피 주가는 상장 2년여만인 이달 6일까지 80% 넘게 하락했다. 로터스PE는 더블유씨피의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 IPO) 단계에서 주당 7만~8만원대에 투자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로터스PE가 투자 성과를 냈을 땐 정 회장의 두 자녀가 성과 보수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로터스PE는 2020년 설립 이후 지난해 말까지 6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 중 44억원은 회사 유보금을 쌓아두고 나머지 16억원은 배당 등을 통해 정 회장의 두 자녀에게 돌아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HL홀딩스에 투자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정몽원 회장 두 자녀가 HL그룹의 전적인 지원에 따라 투자 실패에 대한 위험은 전혀 부담하지 않은 채 운용에 대한 관리보수와 투자 성과보수만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관 큰손 "오너 자녀 PEF에 2170억 지원 사실 뒤늦게 인지"
HL홀딩스가 계열사를 통해 회삿돈 2170억원을 지원했지만 특수관계인 공시엔 로터스PE가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째 HL홀딩스에 투자한 기관투자사들도 로터스PE가 정 회장의 자녀들이 설립한 PEF 운용사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인지하게 됐다고 말한다. 로터스PE는 HL홀딩스의 사업보고서의 특수관계자 현황에 2022년 2분기까지 등장하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HL홀딩스 주주들은 정 회장 측이 로터스PE를 특수관계인 명단에서 고의로 누락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HL홀딩스의 특수관계인 내역만 명확했더라도 회삿돈이 오너일가 PEF 운용사로 빠져나간 것을 곧바로 인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HL홀딩스 측은 “기타 특수관계인에 기재해오다 표기를 생략했을 뿐“이라며 "고의로 누락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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