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방영 중인 작품 중 좋고 재밌는 드라마도 많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드라마고 미술적인 부분도 훌륭합니다. 볼거리가 충만한, 보면 볼수록 뒤가 궁금해질 작품이에요."
JTBC 주말드라마 '옥씨부인전' 제작발표회에서 주연배우 임지연이 한 말이다.
'옥씨부인전'은 '옥씨부인전'은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 옥태영과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의 치열한 생존 사기극을 담은 드라마다. 임지연은 타이틀롤 옥태영 역을 맡았다.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탄탄한 전개, 다양한 볼거리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옥씨부인전'의 지난 8일 방송분 시청률은 수도권 8.1%(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이하 동일 기준), 전국 7.8%로 또 한 번 자체 최고 기록을 돌파했다. 제대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임지연이 칭찬한 미술, 촬영장을 담당한 김소연 미술감독이 직접 뒷이야기를 전했다.
'옥씨부인전'의 세트를 디자인한 김소연 미술감독은 KBS 1TV '정도전', 2TV '구르미 그린 달빛', tvN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사랑의 불시착', JTBC '이태원 클라쓰', '괴물'과 넷플릭스 '이두나'까지 전통 사극부터 현대극까지 시청률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품들의 미술을 도맡아 해왔다. 김 미술감독은 '옥씨부인전'에 대해 "왕과 궁이 나오지 않는 부분이 좋았다"며 "노비와 서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이 사는 집과 공간으로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이전 작품과 차이점에 대해 소개했다.
"사극 작품을 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궁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궁이 나오지 않아요.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도전 의식도 생기고요."

실제로 주인공 옥태경(임지연 분)의 집을 비롯해 천승휘와 성윤겸(추영우 분)의 공간은 김 미술감독이 가장 공들이고 많은 고민을 담은 곳이었다. 대본을 반복해서 보며 키워드를 정리하고, 이를 시각화하기 위한 레퍼런스를 모은 후 제작진과 회의를 거쳐 본격적으로 디자인 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한 공간도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하는 것.
김 미술감독은 "사극의 세트는 창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차경"이라며 "햇볕이 비치는 처마 밑의 그림자까지 고려해 화려한 단청을 칠하는데, 사극 미술에서는 창밖을 정리하기 힘드니 차경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옥씨부인전'은 창문을 열면 서로의 차경이 보일 수 있도록 공간을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디자인하고, 그래서 처마도 다 만들었다"며 "배경으로 근경엔 소품, 원경엔 사진을 써서 병풍의 답답함을 풀어주고, 가짜인 걸 감추며 시선을 분산시키도록 했다"고 이번 작품이 다른 사극과 다른 차별점을 설명했다.
또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 때 배우들도 들어가서 연기하는 게 다르다"며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실제 집들을 실측해 고증에 맞춰 디자인했다"고 전했다.
김 미술감독은 "물론 스태프가 이동하는 동선의 제한이 있고, 조명 설치 등의 불편함이 있다"며 "이 모든 걸 감수하고 디자인과 의도를 살려준 조명 감독님, 예쁘게 찍어준 촬영 감독님과 연출자인 진혁 감독님 모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옥씨부인전' 세트의 또 다른 특징을 '현대로의 치환'을 꼽았다.
김 미술감독은 "'옥씨부인전' 대본을 보며 재밌었던 게, 거의 대부분의 키워드가 현대물로 치환이 됐다"면서 '옥씨부인전'의 주요 배경과 사건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감댁 마님들이 모이는 유향소는 차를 마시는 카페의 느낌으로, 사극에서 '주리를 틀라'며 자주 등장하는 재판장도 현대적인 법원을 사극으로 치환해서 디자인했다"며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함은 있어야 해서 재판장의 경우 외관은 야외 느낌이 나도록 하고, 상석에 재판장이 앉아 있고, 양옆에 서로를 변호하는 외주부가 서 있는 형태를 잡았다"고 전했다.

방송 이후 '조선판 마마(MAMA)'라며 화제가 됐던 전기수 천승휘의 공연에 대해서는 "현대의 콘서트, 화려한 쇼를 떠올리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무대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며 "천승휘의 무대를 최대한 화려하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시청자들이 알아봐 준 거 같아 다행"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며 "레퍼런스도 없이 제가 어떻게 하겠냐"고 강조하며 익숙함 속에 새로움을 찾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새롭긴 하지만 익숙함이 있는, 그 선을 맞추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지루한 게 1, 복잡한 게 2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1.6 정도거든요. '좋다'는 말을 많이 들을수록 1.6에 맞춘 거죠. 저의 목표도 1.6이고요."
김 미술감독이 '1.6'의 새로움과 함께 강조한 건 '유기성'이었다. 각각의 디자인 요소가 "예쁘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로 전체적으로 연결이 돼야 한다는 것. "공간이 이야기를 가져야 그 자체의 룩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옥씨부인전'에서 김 미술감독이 전한 유기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은 구덕이의 꿈인 바닷가 집이다.
태영이 되기 전 노비였던 구덕이가 아버지와 함께 도망쳐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꿈을 꿀 때 등장하는 이 집은 방과 방 사이에 마루부터 대문, 바다까지 뻥 뚫려 있다. 김 미술감독은 "액자나 사물함에 '이런 곳에 가고 싶다'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붙여 놓는 그런 감성을 떠올렸다"며 "집이 마당까지 뚫려있는데, 이걸 카메라가 통과하면서 시청자들도 함께 '환상이구나'를 느끼고, 빠져나가면서 현실로 간다. 판타지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환기법"이라고 말했다.
"'옥씨부인전'은 궁이 아닌 가옥이 메인이라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어요. 시청자들도 이런 공간의 구성, 레이어들을 찾아봐 주신다면 또 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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