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에디는 1656년 출간한 <어둠 속의 촛불>에서 합리적인 지식의 결핍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세부터 이어져 온 마녀사냥을 통탄하며 “우리 스스로의 무지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이 유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탄식했다.‘12·3 비상계엄 사태’의 부정적 효과 중 하나는 각종 음모론이 정치 무대로 흘러들어올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를 통해 계엄 선포 배경에 부정선거 음모론이 있음을 스스로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고, 지시를 받은 장군들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어떻게 부정선거 증거를 찾을지 의논했다.
정치의 변방에 머물던 음모론이 주류로 진입하고 있는 시점이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터져 나온 광장의 환희가 가시기도 전에 한국 사회는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를 음모론과의 지루하고도 어려운 싸움에 빠져들었다.
윤 대통령은 음모론의 횡행을 막을 봉인도 풀어버렸다. 지난 늦여름부터 야당이 제기한 ‘계엄 음모론’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이 나와도 합리적인 반박이 먹혀들기 어렵게 됐다. “계엄 선포 예상도 음모론으로 치부하지 않았냐”는 말에 무너진다. 그 틈을 타고 ‘출산 직후 아기를 사흘간 굶겨라’는 유사 과학을 신봉하는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유튜버 김어준 씨를 국회로 불러들여 “계엄군이 주한미군을 사살해 북한과의 전쟁을 촉발하려 했다”는 말을 전 국민이 듣게 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갖가지 음모를 지어내 퍼뜨렸던 이들이 또 어떤 말로 여론을 호도하려 들지 모른다.
“주류 언론 대신 유튜버를 믿어라”는 말이 흔히 들리는 환경에서 음모론과 맞서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평생을 음모론과 미신 확산에 맞서 싸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삶은 귀감이 된다. 1996년 별세한 그는 과학적이면서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음모론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마지막 저작인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세이건은 다음과 같은 격언으로 시작했다. ‘흑암이 몰려들 때, 그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켜는 게 낫다.’
[반론보도] '[차장 칼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관련
본지는 지난 2024년 12월 20일 오피니언면에 '[차장 칼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출산 직후 아기를 굶겨라'는 유사 과학을 신봉한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과거 저서를 통해 그런 표현을 한 적은 있으나 유사 과학과 관계가 없으며 신봉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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