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상암동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국내 최초의 민간 어린이재활병원인 이곳에는 매일 300여 명의 어린이가 찾아와 재활치료를 받는다. 지난 9년간 이곳에서 집중 재활치료를 받은 장애어린이가 총 59만여 명에 이른다. 2016년 개원 당시 이곳은 ‘기적의 병원’으로 불렸다. 어린이재활 분야는 턱없이 낮은 의료보험 수가로 치료할수록 적자가 났기에 당시 국내에는 어린이재활병원이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건립 전부터 이를 무모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수많은 장애어린이와 가족에게 재활의 희망을 밝혀준 곳은 올해로 설립 20주년이 된 푸르메재단이다.

푸르메재단은 부인의 장애로 국내 장애인 재활치료 현실을 알게 된 백경학 상임대표가 설립했다. 백경학 상임대표와 부인 황혜경 기부자는 독일 연수 시절인 1998년 영국을 찾았다가 약물을 복용한 현지인의 차량에 큰 사고를 당했다. 황혜경 기부자는 3번에 걸친 대수술 끝에 생명을 구했으나 왼쪽 다리를 잃었다. 영국과 독일에서 2년간 재활치료를 받고 귀국한 뒤 마주한 것은 수개월을 기다려야 겨우 입원이 가능한 국내 재활병원의 열악한 시스템이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고통을 알게 된 백경학 상임대표는 환자 중심의 재활병원을 짓기로 결심, 직장을 그만두고 재단 설립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 수제 맥주 양조장인 ‘옥토버훼스트’를 서울 종로에서 운영해 성공을 거뒀다. 이곳 지분 10%와 아내의 교통사고 보상금 절반을 더해 2005년 푸르메재단을 설립했다. 백경학 상임대표는 “장애인이 제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영국, 독일에서 경험한 환자 중심의 재활병원을 우리나라에도 만들자고 아내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푸르메재단은 2007년 민간 최초로 장애인 전용 푸르메나눔치과를 개원, 장애인 재활의료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3000여 명의 시민과 여러 기업의 나눔으로 기금을 확보하고, 서울 종로구가 제공한 부지 위에 2012년 지역사회 장애어린이와 성인장애인을 위한 통합형 재활기관인 푸르메센터를 건립했다. 이와 같은 재활기관이 민관협력으로 세워진 것은 푸르메센터가 국내 최초 사례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청년을 위한 혁신적 일자리 모델로 첨단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팜도 운영 중이다. 재활치료를 마치고 성인기에 접어든 장애인들의 일자리 문제도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2022년 경기도 여주시에 푸르메소셜팜을 건립했다. 이 뜻에 공감한 장애청년의 부모가 부지를 기부하고, 2300여 명의 시민과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첨단 스마트팜을 기반으로 한 발달장애인 일터로는 국내 최초 사례다. 현재 55명의 장애청년이 이곳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한다.

지금까지 5명의 장애청년이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독립생활의 꿈을 이뤘고, 5명이 자립 훈련을 받고 있다. 푸르메소셜팜은 첨단기술을 적용한 유리온실 형태의 스마트팜과 많은 시민이 찾아오는 베이커리 카페 ‘무이숲’, 교육문화센터까지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우리나라에 전례가 없는 장애인 일자리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지난해 12월, 20여 년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HD현대아너상 대상을 받았다. 이 상은 HD현대1%나눔재단(이사장 권오갑)이 소외된 이웃과 취약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 영웅을 발굴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기 위해 작년에 제정한 것이다. HD현대1%나눔재단 측은 “어린이재활병원(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스마트팜 기반의 발달장애인 일터(푸르메소셜팜)를 국내 최초로 건립하는 등 한국 장애인 복지에 새로운 지평을 연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백경학 상임대표는 “우리나라 장애인의 열악한 재활환경을 알고 장애인이 잘 치료받고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지난 20년간 묵묵히 노력해왔다”며 “이 상은 앞으로도 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쓰라는 격려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사회 장애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기부자들과 함께 풀어가도록 더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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