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런던의 플리트 스트리트를 가면 법원 건물 바로 앞길 한가운데 용의 모습을 한 동상이 서 있다. 포악하게 생긴 인상에 날개가 달려 있는데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채만 한 용이나 에펠탑만 한 용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 몸집에 맞는 날개를 붙이려면 그렇게 큰 용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용은 날개가 없다. 날개 없이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시아의 용은 건물이나 산만큼 크면서도 부드럽게 하늘을 날아오른다. 아시아인들은 어떻게 거대한 용이 날개 없이 날 수 있냐고 의문을 품지 않는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유럽 교회에 가득한 천사 조각은 하나같이 날개를 달고 있다. 아기 천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남성 천사인데,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모습이 어색한 경우가 많다. 반면 아시아의 천사는 날개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만 생각해도 분명하다. 선녀는 특별한 옷을 입으면 날아오를 수 있을 뿐, 날개가 필요없다.
서구 사회에서는 '날기 위해서는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날개 없이 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영화 '엑스맨'이 나올 때까지 서구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은 날기 위해서 거미줄을 쏘거나, 날개를 달거나, 발에 로켓 엔진을 달고 있었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가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했다는 이카로스의 신화도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 국제 분쟁 사건에서 외국 법원의 판사나 외국 중재인들은 이 문구를 매우 이상하게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내용의 서신을 보내면서 상대방의 번창을 기원한다는 것이 이중적인 태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또 아무도 묻지 않고 오해한 채로 사건이 진행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 보자.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O·X 모양을 본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O는 'yes', X는 'no'라는 의미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이를 알파벳으로 인식했을 것이고, X는 'yes'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은 X가 한국에서 매우 강한 부정을 의미한다는 점을 상상하기 어렵다.
공항 입국카드에 예·아니오를 표시할 때 한국인들은 절대 X 표시를 하지 않는다. O나 V 표시를 한다. X는 'no'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떤 국제 소송에서 한국 기업이 작성한 메모에 X 표시가 있었는데, 그 의미를 두고 한참을 다툰 기억이 있다.
서로 다른 국가에 속한 기업 간의 국제 거래는 다른 문화권의 기업들이 계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약속하고 이행함으로써 이뤄진다. 그런데 각자 문화에 익숙한 기업들이 타 문화와 전통을 가진 외국 기업과 거래를 하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국제 거래가 분쟁으로 발전하면 그 차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국제 거래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려면 양측의 문화의 전통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해석을 찾아야 한다. 국제 거래에서 발생한 분쟁을 한 나라의 법원에서 소송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문화와 전통에 익숙한 판사들이 타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해야 하는 도전을 맞는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본인에게 익숙한 문화에 따라 판단을 내리면 기업들도 수긍하기 어렵다.

문서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서구 사회, 특히 영국법계는 모든 것을 문서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문서에 적힌 내용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해서 문서와 다른 주장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아시아 지역에서는 문서에 적힌 내용 자체보다는 내용의 전체적인 취지나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에 관심이 많다.
법률도 마찬가지다. 각국의 법률은 다르고,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한 대륙법은 영국에서 발전한 영미법과 체계가 완전히 상이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다. 대륙법계에 따른 분쟁 해결은 영미법계 법원의 재판관들에게 개념적으로 큰 도전이 된다.
예컨대 쌍무계약에서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나도 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 즉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계에서는 당연한 개념이다. 하지만 영미법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 영어로는 번역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영미 판사들에게 설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당 계약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의 판사가 아닌 기업이 직접 선택한 개인이 재판관의 역할을 하면서 분쟁에 관한 판정을 내려 해결한다. 기업들은 재판관 역할을 할 중재인을 선택하면서 여러 나라의 문화와 전통의 차이를 잘 인지하고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직접 고른다.
중재 절차에서는 국가에 제한 없이 어떤 나라의 변호사도 직접 대리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잘 이해하면서도 그걸 중재판정부에 효율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대리인을 자격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 거래에서는 소송보다 국제중재가 분쟁 해결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스포츠 분야는 진작부터 중재가 많이 이용되어 왔다. 축구의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하면 모든 분쟁은 FIFA 규칙에 따라 중재로 해결하게 되어 있다. 축구와 관련한 모든 분쟁은 축구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중재인이 돼 분쟁을 해결한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경기 도중에 분쟁이 발생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스포츠 중재가 진행된다. 중재인들이 경기 중에 대기하고 있다가 도핑 이슈든, 경기 결과에 대한 이의든, 그 자리에서 중재를 진행해 신속한 결론을 내려준다.
단심제인 중재에서는 한판의 승부로 모든 것이 결정 난다. 그러니 총력을 다해서 주장을 펼치고 최선을 다해서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 국제 중재 절차에서는 법률은 물론 문화와 전통의 차이까지 이해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해야 정당한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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