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보라 몰아치는 바닷가 풍경은 한편의 판타지다. 몽환적 분위기가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회색도시 직장인들의 온갖 잡념은 파도의 흰 거품처럼 부서진다.
얼마 전 강원도로 맛 기행을 떠나는 와인모임과 함께했다. 겨울이 제철인 방어와 밀복 회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기 때문. 와인 전문가 수준의 멤버들이 챙긴 와인 리스트 중에는 레드 두어 병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생선회에는 화이트 와인’이라는 명제는 이제 국민 상식으로 통한다. 실제 레드 와인의 타닌과 철 성분이 생선의 비린 냄새를 증폭시킨다는 연구논문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팀의 관능검사 결론이다.
그러나 보디감이 가볍고 향이 풍부한 레드 와인이 방어나 참치, 삼치 등 기름기 많은 생선회를 만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 경우 화이트 와인보다 오히려 레드 와인과의 궁합이 훨씬 더 잘 맞기 때문이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음식에 곁들여 마시는 술이다. 겨울철 방어회와 잘 어울리는 피노 누아 레드 와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구세계보다 맛과 향이 상대적으로 짙고 탄탄한 신세계 와인을 중심으로 찾아본다.
가장 먼저 ‘레조낭스, 데쿠베르트 빈야드 피노 누아’가 떠오른다.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오리건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이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붉은 과실의 강한 맛과 산뜻한 청량감’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모금에서 단박에 잡을 수 있는 딸기와 자두, 감초 향이 방어의 풍미와 섞이면서 기름기를 부드럽게 녹이는 역할을 한다. 이어 야생 체리와 싱싱하고 고급스러운 나무의 복합미와 잔향이 길게 이어진다.
레조낭스는 프랑스 부르고뉴 최대 와인 생산자인 루이 자도가 미국에 처음으로 설립한 와이너리다. 그 덕분에 150년 전통의 양조 기술은 물론 손 수확 등 친환경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수입사는 신세계L&B.
다음은 ‘플라워스, 소노마 피노 누아’. 와이너리 위치는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 소노마 코스트. 태평양에서 불과 3km 떨어져 있다. 풍부한 미네랄과 균형 잡힌 산도 유지는 564m의 해발고도 덕분이라는 것이 수입사 동원와인플러스의 설명이다.
이 와인은 한 모금 마시자마자 가벼운 보디감과 산뜻한 레드 체리 아로마가 방어 뱃살의 기름기를 잡아준다. 깔끔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다. 특히 상쾌한 산미와 복합미 덕분에 생동감과 긴 잔향을 느낄 수 있다.
소노마 코스트는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밤에는 서늘한 기후를, 낮에는 풍부한 일조량을 유지해 고품질의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100% 자연 효모 발효가 특징. 알코올 도수는 14.1%다.
끝으로 ‘레이다 코스탈, 라스 브리사스 피노 누아’를 소개한다. 이 와인은 칠레 아콩카구아 레이다밸리 해안지역에서 생산된다. 그 때문인지 ‘상쾌한 느낌과 강렬한 미네랄리티가 특징’이라는 것이 수입사의 설명이다.
금양인터내셔날 정원남 과장은 “기름기가 적당히 차오른 방어회와 함께 라스 브리사스 피노 누아 와인을 한 잔 마시면 입안의 상쾌한 조화는 물론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와인 전문가들은 흔히 ‘와인의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마리아주(와인과 음식 간의 조화)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어떤 음식과 함께 마시느냐에 따라 와인 고유의 맛이 상승하거나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마리아주의 절대 원칙은 없다. 느끼고 생각하며 마시고,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가 와인 마니아로 가는 왕도다. 기름기 가득한 겨울철 방어와 신세계 피노 누아의 마리아주를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지금 당장!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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