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엄습하더라고요”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대관식을 지켜본 판교 테크 기업 관계자의 반응이다. “트럼프 1기 정부를 그렇게 공격하던 빅테크 수장들이 죄다 참석해서 신임 내각 장관 후보들보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데요. 그게 어떤 의미겠어요?”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원하는 건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참여하면서 자신들 중심의 새로운 룰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인공지능(AI), 우주, 자율주행, 첨단 바이오 등 미래를 이끌 새로운 산업의 규칙을 선점해 해외 다른 경쟁사들을 따돌리겠다는 심산 아니겠나. 더 우려스러운 건 한국의 영원한 숙적인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비주류에서 출발해 일본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는 ‘아웃라이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아시아 기업인 중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난 몇 안 되는 기업인이다. 손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후 미국에 1000억달러를 투자하고 1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손 회장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AI 패권을 위해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손 회장을 핵심 파트너로 지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손 회장과 지난 7일 만찬을 함께했다. 대화 주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였다. 손 회장은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무엇이든 가르쳐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를 비롯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대만계 미국인이다. 이들은 미국의 AI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국 테크 기업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측근을 만났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국 대표 기업인으로 정용진 신세계 회장과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건 그래서 역설적이다. 쿠팡과 신세계는 한국을 대표하는 내수 기업이다.
이번 트럼프 대관식이 보여준 건 글로벌 기업인의 모델이 무엇인지다. 트럼프 시대엔 기술, 열정, 자본, 정무적 판단력, 쇼맨십, 투자 감각까지 모든 걸 갖춘 ‘육각형 CEO’만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은둔형 경영자’란 타이틀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얘기다.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직함은 글로벌투자책임자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경영쇄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을 동굴로 들어가게 만든 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도 문제지만, 명함으로만 소비되는 ‘글로벌’ ‘쇄신’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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