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한 지 4주가 지났다. 엉뚱한 일로 세상이 극단적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서인지, 참사 원인에 대한 차분한 토론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구체적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다.참사는 작은 사고와 요인들이 길게 결합돼 발생한다. 이런 참사는 당연히 우연적이다. 이번 참사도 부적절하고 과다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결함이 많은 보잉 737-800, 새 떼, 관제 미숙, 항공기 내의 알 수 없는 이상 현상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이러한 원인들이 존재했다고 해서 꼭 참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주항공 2216편 조종사는 이 모든 문제점을 극복하고 동체 착륙을 완벽하게 해냈다. 비상사태 대응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런웨이 끝의 상상치도 못한 콘크리트 벽이 179명을 사지로 내몰았다.
구조물은 보통 연약해서 문제가 되곤 했다. ‘순살아파트’나 철거 건물, 붕괴된 백화점이나 다리들 말이다. 하지만 부드럽고 유연하며 탄력적이어야 할 시설도 또 나름대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온 국민이 이번 참사에서 목격했다. 활주로 북쪽보다 남쪽 해발고도가 낮아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시설) 높이를 맞추려 둔덕을 조성했다는 게 공항 측의 설명이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둔덕형 로컬라이저를 조성하되 쉽게 파손되는 재질로 기체 충돌을 흡수하도록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를 콘크리트로 설계해 오히려 충격을 키우는 살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2010년 제정된 공항안전운영기준에 ‘착륙대 후 240m 구역’에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낮게 만들도록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안공항은 2020년에도 이 둔덕을 한층 단단하게 보강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버런 상황에서 충격을 흡수·파손해야 할 시설을 왜 오히려 강화했는지가 이번 참사와 관련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정부는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안전성 면에서 미흡했다” 또는 “안전구역 밖 시설물엔 별 제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영리한 머리에서 나온 그럴듯한 입장이지만, 그저 뜻 없는 허공의 말뿐이며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답을 철저하게 찾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공항뿐 아니라 수많은 시설물에 ‘규정 위반은 아닌’ 살인장비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도로, 건설·산업현장, 항만·비행장 곳곳에 누가 설치했고 어떻게 관리되는지도 모르는 또 다른 형태의 콘크리트 벽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운용하는 규정 자체가 이미 낡거나 미비하다는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 “원래 설치가 허가된 시설이라 괜찮다”는 식의 답변은 곤란하다. 한 번 만들어진 콘크리트 벽이라고 해서 영구불변일 이유가 없으며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달라진 안전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덩달아 공항별 전수조사를 하는 건 이미 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의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콘크리트 벽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의 전근대적 경직성이다. 튼튼하면 “별문제 없겠지”라는 안이함과 관리 부실, “규정 외 지역은 통제할 이유가 없다”는 행정 논리가 만나면 이번처럼 치명적인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튼튼해야 할 것은 아낌없이 쏟아부어 강고하게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할 것은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지 과연 우리는 알고 있을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는 고통스럽고 소프트웨어로 설계하기에는 엄청난 사전 작업과 집중력이 소요된다. 또 제품이나 서비스로 만들어 내려면 정교한 기술적 능력이 한없이 투입돼야 하고, 구축한 후에도 관리 유지에 상당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실패의 연속이겠지만 지속적으로 피드백하면서 최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래의 산업과 사회 그리고 가치는 이 유연성 확보에 달려 있다. 무안공항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건너편 가덕도공항 쪽을 보면서 절망으로 굳어진다. 콘크리트 벽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사회 시스템의 강고한 장벽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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