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대체 언제 위대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수도 없이 외치지만 똑 부러지게 언제라고 말한 적이 별로 없다. 어쩌면 서부 개척과 영토 확장 시대인 1800년대를 ‘위대한 미국의 시대’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백악관 재입성 첫날부터 집무실에 엘리트 정치인과 반목한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1829~1837년 재임) 초상화를 걸고, 취임사에서 윌리엄 매킨리 전 대통령(1897~1901년 재임)을 거명하며 “관세와 재능을 통해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칭송한 걸 보면 말이다. 매킨리는 하와이를 병합하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괌,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든 대통령이다. 취임사에서 주목받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도 미국의 팽창주의를 정당화하며 19세기에 유행한 단어다. 그때 미국은 노골적으로 팽창을 시도했지만 유럽 열강에 뒤진 2류 국가였다.미국이 진짜 위대해진 건 누구나 아는 것처럼 2차대전 이후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에서 파시즘을 물리치고 자유세계를 지켰다. 전후 세계 질서 틀을 짜기 위해 세계 각국 대표단이 뉴햄프셔주 산골짜기 브레턴우즈의 호텔에 모였을 때 미국은 얼마든지 영토를 늘리고 식민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 선박뿐 아니라 다른 나라 선박도 무제한으로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3차 대전을 막고 미국에도 이익이란 대전략에 따른 것이었지만,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통해 냉전에서 승리해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며 동맹의 번영을 뒷받침했다. 동맹과 윈윈했을 때 미국이 위대했던 것이다.
세계의 소비시장 역할을 하면서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세계화로 실리콘밸리와 월가가 부를 쌓는 동안 러스트벨트의 박탈감이 커진 것은 그런 ‘위대한 미국’의 부작용이었다. 트럼프는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부상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지난 대선 때보다 더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공화당은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트럼피즘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뉴노멀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도 트럼프 시대에 적응이 불가피하다. 트럼프의 목표는 결국 미국의 패권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목표다. 우리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방위비 분담을 늘리는 대신 핵잠수함 기술을 받는 등 거래의 기술이 필요하다. 반도체뿐 아니라 조선, 원전, 방산 등 트럼프 2기에 협력할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트럼피즘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만은 없다. 동맹으로서 할 말은 해야 한다. 만약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를 얻겠다고 나선다면 중국은 대만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2기 예상 시나리오로 강대국 간 ‘나눠먹기식’ 거래, 리더 없는 세계에서 무정부적 혼란, 우발적 전쟁 등을 제시했는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가 북핵 폐기 대신 김정은과의 직거래를 통해 북핵을 용인하겠다고 나선다면 우리는 평생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닥치는 건 막아야 한다.
미국도 동맹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동맹은 미국의 최대 전략 자산이다. 동맹을 잃으면 미국도 손해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도 불리해진다. 동맹이 없으면 ‘MAGA’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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