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 승계의 실패가 조직의 미래를 어떻게 뒤흔드는지는 201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오랫동안 후계자로 준비돼 온 브라이언 크러처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6주 만에 부적절한 개인행동으로 갑작스럽게 사임을 발표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은퇴한 전임 CEO를 급히 다시 불러야 했다. 한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과 리사 수 AMD CEO가 근무하며 미국 반도체산업을 이끌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이후 인공지능(AI) 시대의 도전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챗GPT 등장 이후 반도체기업 주가 상승 랠리에서도 나스닥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극단적인 케이스인 것만도 아니다. 한때 세계 최고 기업이던 GE는 그 유명한 승계 계획 ‘C세션’을 통해 엄선한 제프리 이멜트의 실망스러운 경영 성과로 예전의 영광을 잃었다. 인텔의 최고 엔지니어였고,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VM웨어 CEO로 성공을 거둔 팻 겔싱어는 인텔의 구원투수로 여겨졌으나 파운드리사업을 회생시키지 못하고 은퇴를 선택했다. 이처럼 차세대 리더를 제대로 양성하지 못한 기업은 하나같이 글로벌 경쟁의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나 남은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성공적인 승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후계자 풀을 만들고 평가하는 과정도 어렵지만, 선임된 CEO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리라는 보장도 없다. 조직 규모가 크고, 경쟁이 치열한 첨단 산업의 글로벌 혁신 기업에서도 효과적인 승계 계획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더욱이 CEO의 갑작스러운 유고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다. 다만 위험한 함정은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는 조기 발탁과 고속 승진의 유혹이다. 경영자의 자질을 보이는 고성과 및 고잠재력자를 일찍 발굴해 빠르게 승진시키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조직 내 충성 경쟁을 심화해 파벌을 만들고, 리더로서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과도한 권력부터 쥐게 함으로써 부적절한 행동을 초래한다. 승계 이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오랜 기간 건전한 내부 경쟁의 부재로 인해 대안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둘째, 성공 경험에 대한 맹신이다. 특정 사업부문의 뛰어난 실적이나 과거의 성공 스토리가 더 큰 조직에서의 리더십과 미래 경영 능력의 보증수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 성공에 대한 집착이 겸손과 학습 의지를 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AI, 지정학적 리스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한 지금, 한때의 성공 공식이 오히려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피터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리더는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한다. 이는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없는 리더가 새로운 환경에서 더 이상 유효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셋째는 객관적 리더십 평가의 부재다. ‘딱 보니 리더가 될 감이 된다’는 직관은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높다. 리더십은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 전략적 사고, 글로벌 감각 등 다차원적인 특성으로 구성되며 체계적으로 평가되고 검증돼야 한다. 의사결정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인바스켓(In-Basket Exercise) 같은 조직심리학 분야의 엄밀한 평가 방법은 인간 내면에 깊이 잠재된 리더십 행동을 객관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많은 조직이 이를 형식적으로만 활용하거나 평가 결과를 단순 참고 자료로만 사용하는 실수를 범한다.
대한민국은 AI 시대 도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성장 모멘텀을 잃었고, 한국 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새해 벽두인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미래 기술 혁신의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그 속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AI 시대의 중요한 출발점을 놓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 승계 실패의 대가는 단순한 기업의 쇠퇴로 끝나지 않는다.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라도 현재의 혼란을 신속히 수습하고, 다음 세대 리더를 준비할 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의 존속과 번영은 이 승계 계획의 성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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