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한 18세기 영국은 북미 대륙과 카리브해, 인도 지배권을 두고 프랑스와 계속 다퉜다. 영국은 숙적 프랑스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프랑스와 본격적인 군사 대결을 벌이기 시작한 1689년부터 1715년까지 프랑스 와인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그 대신 토착 술인 맥주를 장려했다. 그러나 영국에 사는 사람 중 많은 이가 여전히 프랑스 와인을 깊이 사랑했다. 와인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을 겨냥해 발 빠른 수입업자들은 1703년부터 영국의 보호국이나 다름없던 포르투갈에서 포트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다.프랑스 와인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포트는 술꾼들에게 쉽게 어필했다. 그러나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그 맛이 프랑스 와인과 비교할 수 없이 조야한 수준이었다. 영국은 1716년부터 프랑스 와인을 다시 수입하기 시작했지만 줄곧 높은 관세를 붙여 소비를 위축시켰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적국 프랑스에 타격을 주는 애국적 정책이라고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줄기차게 외쳤다. 이들의 국수주의 선동을 포르투갈 와인 수입업자, 영국 맥주 양조 및 유통업자 등 이권세력들이 적극 지원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지식인도 없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이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었다. 그는 ‘무역의 균형에 대해’라는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영국인의 프랑스에 대한 시기심과 증오심은 끝을 모를 정도라 프랑스와의 무역에 온갖 장애물을 설치해놨고 그것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의 맞대응을 야기해 프랑스 시장에 영국 모직제품을 팔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프랑스 와인을 규제한 결과 영국 소비자는 사실상 더 열등한 술을 포르투갈에서 더 비싼 가격에 사와서 마시고 있다. 포르투갈 와인은 관세가 덜 붙어 프랑스 와인보다 싸지만 품질 대비 과도하게 비싸다”고 흄은 지적했다. 흄이 보기에 영국 정부가 프랑스와 싸우는 것은 특정 이익집단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국인에게는 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영국인의 소비생활을 왜곡시키는 원흉이었다.
옛날 먼 나라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 이 나라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대한민국은 자유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지만 우리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 휘둘려 일본 제품 수입을 거부하는 캠페인을 벌인 일이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에 대한 거부감도 확산하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전쟁을 서방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이들은 러시아도 혐오 대상으로 삼을 법하다.
그러나 정치선동가들이 만들어내는 지정학적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은 우리가 지켜야 할 필수적인 원칙이다. 중국이 싫어도 중국산 공산품을 값싸게 사다 쓰고, 토착왜구를 비난하면서도 일본여행을 다녀오고, 러시아가 하는 짓이 불쾌해도 러시아산 대게를 즐기는 대한민국 소비자의 슬기로운 이중성.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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