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 씀씀이가 ‘카드 사태’로 소비가 급감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가계 씀씀이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감소하는 등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비가 얼어붙자 저성장 추세가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승용차, 가전제품을 비롯한 내구재(-3.1%)와 의류를 포함한 준내구재(-3.7%), 음식료품을 비롯한 비내구재(-1.4%) 상승률이 모두 마이너스였다. 김귀범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임금 상승률은 높지 않은데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물가가 치솟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2.3%를 기록해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치(2.0%)를 웃돌았다. 특히 서민 체감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과일, 채소, 해산물을 비롯한 신선식품지수 상승률이 9.8%로 2010년(21.3%) 후 가장 높았다. 비싼 가격표를 보고 놀란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이른바 ‘스티커 쇼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작년 말 ‘12·3 비상계엄’ 사태와 그에 따른 탄핵 정국,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겹쳐 ‘연말 특수’가 사라진 것도 소매판매를 옥죄었다. 작년 12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6% 줄었다. 지난해 9월 -0.3%, 10월 -0.7%, 11월 0%를 기록하는 등 넉 달째 부진을 이어갔다.
내수 흐름은 좋지 않았지만 작년 산업생산과 설비투자는 자동차,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선전했다. 지난해 연간 전(全)산업생산지수는 113.6으로 2023년(111.7) 대비 1.7% 상승했다. 연간 설비투자지수는 111.9로 전년(107.5) 대비 4.1% 올랐다.
작년 12월 취업자는 2804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5만2000명 감소했다. 2021년 2월 이후 3년10개월 만에 줄어들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폭이 작년(15만9000명)을 밑도는 12만 명가량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9월 말 기준 한국 가계의 금융부채는 2356조원으로 집계됐다.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90.8%에 달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민간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불어난 이자비용에 가계가 지갑을 닫는다는 뜻이다.
소매판매 부진은 저성장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8%로 절반에 육박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불확실성이 겹쳐 내수 경기가 악화하고 있다”며 “자동차와 반도체를 대체할 수출 선도사업도 보이지 않는 등 저성장 고착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이광식/남정민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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