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에서 2000억원대에 달하는 부당대출이 이뤄졌다는 내용의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금융지주가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이 예정대로 흘러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감원이 정기검사를 바탕으로 도출하는 우리금융의 경영실태평가(경평) 등급이 현재 2등급에서 3등급 이하로 하향 조정될 경우 두 생보사 인수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4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2024년 금융지주·은행 검사 결과 설명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우리금융지주 등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금감원이 검사로 밝혀낸 우리은행의 부당대출은 101건이다. 부당대출 금액은 2334억원에 달한다. 이중 730억원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부당대출이다. 앞서 금감원이 지난해 발표한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규모는 350억원이었으나 후속 검사 과정에서 380억원이 추가로 발견됐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은 손 전 회장 임기 때(279억원)보다 임종룡 현(現) 회장 임기 내(451억원)에서 더 많이 취급됐다. 손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730억원 부당대출 중 절반에 해당하는 338억원이 부실대출로 분류된 상태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에서 부당대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원인으로 전현직 임직원들의 대출심사·사후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전직 우리은행 부행장을 비롯해 은행 전현직 임직원 27명이 단기성과를 내기 위해 여신 심사를 소홀히 했는데 이들을 거쳐 1604억원의 부당대출이 이뤄졌다. 이중 부실화된 대출은 1229억원(76.6%)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과정에도 문제점이 있다고 짚었다. 우리금융 내규에 따르면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 사전 심의를 먼저 열고 이후 사전 심의 내용을 이사회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임 회장은 리스크위원회 개최 전 이미 이사회에 동양·ABL생명 인수 안건을 상정했다. 또 동양·ABL생명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당일 리스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열었다. 이 때문에 리스크위원회 심의 내용은 이사회 안건에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금융은 중국 다자보험과의 동양·ABL생명 주식매매계약서에 '금융 당국의 자회사 편입 불허 시 계약금을 몰취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금융당국이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를 허가하지 않을 경우 다자보험에 지불한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금융은 다자보험과 주식매매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인수가액 1조5493억원의 10%인 약 1550억원을 계약금으로 냈다.
금감원은 이날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영실태평가 등급 산정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영실태평가 등급은 정기검사를 기반으로 도출되는데 우리금융은 현재 2등급이다.
금감원이 대대적으로 강도 높은 검사를 벌여온 데다가 심각한 내부통제 부실과 리스크 관리를 경시하는 조직 문화 등을 지적한 만큼 평가 등급이 3등급으로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 자회사 편입 승인 규정 등에 따르면 우리금융이 두 생보사를 인수하려면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번 경영실태평가에서 내부통제가 별도 평가 부문으로 분리되고 평가 비중도 기존 5%에서 15%로 3배가량 대폭 상향 조정된 점도 평가 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금융당국은 우리금융으로부터 동양·ABL생명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받아 지난달 중순부터 심사에 착수했다. 최종 결정은 금융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해 의결되는 구조다.
심사 기간이 60일이라 원론적으로는 3월 중순에 발표가 나야 하지만, 자료 제출 기간은 빠지게 돼 있어 최종 결론은 4월 이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그 전에 금감원이 3등급으로 종합등급을 내려도 금융위에서 '인수 승인'을 결정할 수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달 15일 동양·ABL생명에 대한 우리금융 자회사 편입 심사신청이 들어왔다"며 "2월 중 금융위에 (경영실태평가 등) 정기검사 결과를 송부해 3월 중에라도 금융위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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