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는 4일 권용수 건국대 교수에게 의뢰한 ‘일본 회사법상 집중투표제 도입 및 폐지에 관한 법리적 검토’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50년 미국식 이사회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소수 주주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그러나 일본은 1974년 제도를 폐지했다. 투기자본이 소액주주와 힘을 합쳐 이사회에 진출하는 등 경영권이 외국 자본으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된 게 이유였다. 권 교수는 “일본 사례를 보면 집중투표제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특정 소수파의 이익만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있다”며 “집중투표의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 없이 무턱대고 집중투표를 의무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큰 만큼 입법 논의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상법 개정안의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이 시행될 경우 국내 10대 상장사(금융회사와 공기업 제외) 중 4곳, 30대 상장사 중에선 이사회 8곳이 ‘외국 기관투자가 연합’에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경협이 자산 2조원 이상 국내 상장사 150곳에 상법 개정안을 적용한 결과다. 한경협은 “분석 대상 회사 중 이사회가 외국 기관투자가 연합에 넘어갈 수 있는 기업의 자산 비중은 전체 상장사의 13.6%인 596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경제계에서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제2 소버린’ 사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버린 사태는 2003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글로벌 분식 사태에 따른 경영 공백을 틈타 SK㈜ 지분 14.99%를 사들인 뒤 소액주주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을 끌어들여 경영진 퇴진, 자산 매각,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한 사건이다.
보고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의 다른 부작용도 함께 지적했다. 주주 간 파벌 싸움 가능성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자격 미달의 이사가 선임되거나 기업 기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자본 기여도가 낮은 주주가 경영에 깊게 개입하고 대주주 영향력이 줄어들어 대규모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는 부작용도 보고서는 밝혔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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