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물가상승률이 환율과 수입물가 상승 여파로 5개월 만에 2%대에 재진입했다. 급등한 원·달러 환율(원화 가치 하락)이 물가를 자극해 소비를 위축하고,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물가는 계속 오르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통계청은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15.71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2.2% 상승했다고 5일 발표했다. 지난해 9월(1.6%) 물가가 1%대로 떨어진 지 4개월 만에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인 2% 선을 다시 넘었다.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구성한 생활물가지수는 2.5% 올랐다. 작년 7월(3.0%) 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지난해 상반기 물가를 끌어올린 신선식품지수는 0.7% 오르며 안정세를 찾았다. 반면 석유류 가격이 7.3% 치솟아 물가를 자극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 달 새 0.3%포인트 뛰었는데 석유류 기여도가 0.3%포인트”라며 “물가 상승분의 대부분을 석유류가 차지한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 석유류 가격이 올 들어 물가 상승의 주요인으로 변한 건 급등한 원·달러 환율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작년 11월까지 1300원대에 머물던 환율이 1400원대 후반까지 뛰면서 수입 물가가 급등했고, 이로 인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석유류와 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올라 물가를 밀어올렸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도 이날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최근 환율 상승이 석유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1월 물가를 0.1%포인트 정도 높였다고 추산했다.
향후 물가 전망에 대해서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기재부 관계자는 “1월 물가가 예상보다 조금 높게 나왔지만 국제 유가가 작년보다 둔화하면서 당분간 물가가 2%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시장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본격화한 관세 전쟁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한국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한·미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까지 올라 물가가 뛰고 소비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논의 중인 ‘벚꽃 추경’도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할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1~1.4%까지 하향 조정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슬로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다시 2%를 넘으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오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현재 연 3.0%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또다시 급등한 데 이어 물가까지 관리 목표를 넘어서면서 변수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슬로플레이션
slowflation. 고물가(inflation)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 속도가 더뎌진(slow) 상황을 뜻한다. 고물가 속에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스태그플레이션과 비교해 경기 하강 강도가 약하지만 경제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준다.
정영효/김익환/이광식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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