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3시간 정도 가면 나가노현이 나온다. 글로벌 3위 프린터 제조 기업 세이코엡손(엡손)의 본사가 있는 도시다. 엡손은 1942년 시계 부품사으로 시작했지만, 이를 통해 확보한 '모노즈쿠리(장인정신)'으로 지금은 프린터, 프로젝터와 같은 전자 기기 제조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지난 5일 엡손의 주력 제품 프린터 연구개발(R&D)의 허브인 히로오카 사무소를 찾았다. 엡손의 일본 내 사무소 중 최대 규모로, 임직원 68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곳에선 엡손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혁신 제품 개발이 한창이었다. 엡손은 이날 친환경 재생종이 장비 '뉴 페이퍼랩'을 외부에 처음 공개했다. 2016년 엡손이 최초 개발한 이 장비는 폐지를 넣으면 깨끗한 재생지로 출력해주는 제품이다. 신제품은 전작보다 소비전력, 보안 등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회사 관계자는 "엡손만의 차별화되는 기술력을 보여주는데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친환경적인 제품"라고 말했다. 엡손은 상반기 중 한국에서 뉴페이퍼랩의 데모 모델을 소개할 예정이다.


신제품의 특징은 종이 파쇄기와 재생기를 분리해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파쇄기와 재생기가 합쳐져있어 상당한 양의 폐지가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단점을 보완해 파쇄기를 여러 곳에 따로 두고 대량의 폐지를 모아 기기를 작동시키도록 한 것. 여러 곳의 폐지가 모두 섞여 기밀 정보 유출 우려가 줄어들었다. 폐지는 한 번에 총 700매까지 처리할 수 있다. 두시간이면 새 종이 500매가 나온다. 재생지가 모두 나올 때까지 시간은 10분이면 된다.
소비전력은 기존 모델의 절반 수준이다. 크기는 기존 모델 대비 가로는 길어졌고, 부피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가격은 전작 페이퍼랩 A-8000 모델(대당 2500만엔, 2억4000만원)보다 소폭 저렴하게 책정될 예정이다.
페이퍼랩은 다소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친환경적인데다, 대기업, 지방자체단체 등에서 사용시 종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엡손의 잉크젯 프린터와 페이퍼랩을 함께 사용하면 효율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재생용지가 기존 종이와 비슷해 질적으로 뛰어나고,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페이퍼랩에 대한 고객 반응이 좋아 문의가 많이 온다"라고 말했다. A-8000은 일본 기업을 포함한 유럽 기업 88대가 팔렸다.
엡손의 전략은 상업용 프린터 시장 트렌트를 유지비용이 비싼데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레이저프린터에서 친환경적인 잉크젯 제품으로 바꾸겠다는 것. 기업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친환경 트렌드를 적극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엡손의 경쟁력은 뛰어난 내구성과 경제성이 꼽힌다. 잉크젯 프린터 핵심 부품인 헤드의 경우 최대 600만장까지 출력이 가능하다. 경쟁사 제품이 최대 200만장까지 사용시 교체해야되는 점을 감안하면 3배 이상 교체 주기가 길다. 잉크 교체주기도 길다. 경쟁사는 2~3만장이 출력하면 소진되지만 엡손은 최대 5만장까지 출력할 수 있다.
시오지리(나가노)=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