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가 ‘보수 전쟁’에 나선 건 수익을 줄여서라도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의도다. 운용사 간 치열한 경쟁으로 보수가 낮아지면 그만큼 장기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투자자에게는 이익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사들이 상품 혁신 경쟁 대신 손쉬운 보수 인하 경쟁에만 매몰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KODEX 미국S&P5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의 운용보수를 기존 연 0.0009%에서 연 0.0001%로 낮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전날 동일한 상품의 운용보수를 연 0.03%에서 연 0.0002%로 인하했다. 운용보수는 ETF에 부과되는 총보수 가운데 자산운용사가 가져가는 몫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국S&P500 ETF의 순자산이 10조원까지 불어난다고 해도 1년에 운용사가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이 삼성운용은 1000만원, 미래에셋은 2000만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두 운용사의 보수 인하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운용은 지난해 4월 미국 대표지수 4종 ETF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5%에서 0.0099%로 인하했다. 이에 미래에셋도 금리형 상품인 ‘TIGER CD1년금리액티브(합성)’ 등의 수수료를 연 0.05%에서 0.0098%로 내리며 맞불을 놨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대형 자산운용사가 ETF 보수 인하 경쟁에 나선 건 시장점유율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다.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은 최근 업계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여 왔다. 5년 전만 해도 삼성운용의 ETF 점유율이 50%를 웃돌며 공고한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해외 투자 수요가 늘고, 미래에셋이 해외 상품을 중심으로 몸집을 불리며 삼성운용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날 기준 삼성운용의 ETF 점유율은 38.1%, 미래에셋은 35.6%다. 두 회사 시장점유율 격차는 2.5%포인트까지 좁혀졌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두 대형사가 하루 차이로 동일한 상품에 대해 보수를 인하하며 최저보수 경쟁을 벌이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돈을 벌지 않아도 좋으니 시장점유율을 절대 내어줄 수 없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보수 인하로 촉발된 운용사 간 ETF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ETF 시장이 2022년 말 78조원에서 최근 185조원 규모로 급성장하며 운용사들의 순위 다툼도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ETF 시장점유율 3·4위인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역시 ‘뒤집기’와 ‘버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임원은 “운용사 간 핵심 인력을 서로 데려가려는 움직임도 치열하다”며 “투자자를 위한 상품 개발 대신 시장점유율 경쟁만 남은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나수지/최만수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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