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09일 16:0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3대 골프 브랜드 테일러메이드 경영권을 둘러싼 한국 사모펀드(PEF)의 비밀 계약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021년 경영권 인수 당시 PEF 운용사(GP) 센트로이드인베스트먼트와 펀드 최대 출자자(LP)인 패션기업 F&F 사이에 '동의권'이라는 이례적이고 기형적인 사적 계약을 맺어 시장 질서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 위반과 함께 경영권 매각 관련 분쟁으로 인해 해당 기업은 물론 다른 투자자 피해도 우려된다.
자본시장법 비웃는 기형적 계약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F&F와 센트로이드가 매각 사전 동의권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쓴 건 2021년 7월 19일이다. 테일러메이드 인수 우선협상권을 따낸 신생 PEF 운용사 센트로이드는 협상 마감기한 약 2주를 앞두고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던 와중에 정진혁 센트로이드 대표가 직접 김창수 F&F 회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MLB와 디스커버리 등 라이센스 패션 브랜드로 큰 성공을 거둔 김 회장도 F&F의 다음 먹거리를 찾던 중이었다. 문제는 투자 구조에서 양측의 의견 차이가 컸다는 점이다. F&F는 PEF에 가장 많은 돈을 대는만큼 미리 정한 가격에 향후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주식매도청구권)을 받거나, 전략적투자자(SI)로 투자에 참여해 센트로이드와 동등한 권한을 갖길 원했다. F&F는 전체 인수 대금 약 2조원 중에서 인수금융 1조원과 중순위 메자닌 4000억원을 제외하고 에쿼티 6000억의 57%에 달하는 3500억원을 대는만큼 향후 테일러메이드 전체 경영권 인수를 염두에 두고 이런 방식의 투자를 원했다. 센트로이드는 F&F에 콜옵션을 주거나, SI로 참여할 기회를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결국 양측은 F&F가 LP로 투자에 참여하되, 테일러메이드는 이사 선임 권한은 물론 매각과 기업공개(IPO) 등 중대한 재무적 결정 시 F&F 측에 사전 동의권을 주는 별도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는 투자 회사의 지분 증권 매매의 가격·시기·방법을 제3자에게 위탁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자본시장법 249조 14를 위반할 소지가 큰 계약이다.
자본시장법 위반을 무릅쓰고 양측의 이런 이례적인 계약을 감행한 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센트로이드는 F&F의 출자를 받지 못하면 딜 자체가 깨질 위기였던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F&F를 설득해야 했다. F&F도 이런 센트로이드의 상황을 이용해 LP 지위로 SI에 버금가는 권한을 갖는 유리한 계약을 맺었다. 센트로이드는 F&F 이외 다른 LP들에게 이런 계약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글로벌 PEF 시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펀드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를 감안해 이런 요구를 하지도 않고, 운용자는 평판 리스크로 인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센트로이드는 해당 계약은 자본시장법의 범위 내에서 체결됐다고 해명한다. 센트로이드 관계자는 "F&F에 부여한 동의권은 자본시장법상 GP의 권한과 의무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센트로이드·F&F 욕망에 멍드는 자본시장
테일러메이드 경영권을 둘러싼 센트로이드와 F&F의 이면계약은 자본시장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구조다. PEF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펀드 출자자인 '쩐주'는 절대 '갑' 위치에 있다. 이런 구조적인 상황을 고려해 자본시장법에선 GP의 독립성을 보호한다. 이번처럼 자본시장법에 위배되는 합의서를 맺는다면 LP는 GP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고, GP는 LP에 종속될 우려가 크다.주요 출자자가 딜 클로징을 며칠 앞두고 이런 합의서를 맺지 않으면 출자를 못한다고 버티면 PEF 운용사 입장에선 법을 위반하더라도 합의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합의서는 펀드와 별도로 GP와 특정 LP 간의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펀드에 참여한 다른 LP들도 모르게 체결될 수 있다.
이번 분쟁에서도 센트로이드 관계자는 "F&F가 궁지에 몰린 PEF 상황을 악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F&F는 "자금 마련이 급할 땐 어떻게든 출자를 받으려 자본시장법 위반까지 감수하겠다며 자진해서 계약서를 쓴 센트로이드가 계약 이후 돌연 말을 바꿨다"고 반박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이면 계약은 분쟁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계약 당시에는 충분한 합의 끝에 양측 모두 법률 대리인의 자문을 받아 촘촘하게 계약서를 썼다고 해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계약서 문구의 허점을 찾아 분쟁을 벌이는 일이 다반사다.
테일러메이드 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센트로이드는 F&F 동의권을 인정하지 않아야 테일러메이드 매각으로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반면 F&F는 내후년 펀드 만기까지 테일러메이드 경영권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해야 테일러메이드 지분을 현물로 받아올 수 있다.
F&F와 센트로이드의 이면 계약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20년 하이브(당시 빅히트) 기업공개(IPO) 전 스틱인베스트먼트, 이스톤에쿼티파트너스(이스톤PE), 뉴메인에쿼티 등과 맺은 비밀 계약을 숨긴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 이 계약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하이브 IPO 투자자는 상장 직후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다. F&F는 테일러메이드 매각 동의권을 성사시키면 새마을금고 신한캐피탈 등 다른 펀드 투자자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한 자본시장법 전문 변호사는 "센트로이드와 F&F가 맺은 이면 계약은 누구 책임이 더 큰지를 떠나 GP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계약이라는 점은 분명하다"이라며 "자본시장의 질서를 흔드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사법기관이 제대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