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땀방울 함께 쏟아서/모두가 뛰어난 우리 제품들/만들자 보내자 벌어들이자/번영에의 외길은 수출뿐이다(후략).”1964년 한국은 대망의 수출 1억불을 달성했다. 그 벅찬 감동을 기리기 위해 만든 ‘수출의 노래’ 가사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였다. 지난해 우리 수출액은 6838억달러로 순위로는 세계 6위다.
미국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1960년 10월호에 최빈국 한국을 향해 이런 글을 올렸다. “한국은 경제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라다.” 이를 보란 듯이 뒤집고 선진국으로 들어서게 한 원동력은 수출이었다.
과거 상공부 시절, 장관과 직원들은 책상 한가운데 ‘수출입국’이라고 써놓고 매일 수출입 일보를 작성했다. 이는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손바닥 크기로 요약해 상의 윗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 결과 가발과 완구, 심지어 돼지털과 오줌조차 외화벌이의 소재가 됐다.
한국 수출은 농산물이 포문을 열었다. 그때도 1차 상품의 경우 높은 국내 가격과 낮은 국제 가격이 수출의 난관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954년 ‘수출장려보조금’을 처음 마련한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생사, 쌀, 인삼, 담뱃잎 등이 선발대로 나섰다. 이 중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생사(生絲)가 단연 선두였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 양잠업이 성했다. 당시 농촌에서는 너나없이 뽕잎을 따다 누에를 쳤고 도회로 나간 앳된 누이들은 잔업을 하며 명주실을 뽑았다.
수출은 장사다. 장사는 시장 규모에 좌우된다. 세계 교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은 먹는 장사인 ‘농식품 시장’이다. 한국식품연감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9조7800억달러. 이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5배, 정보기술(IT) 시장의 4배 규모다. 한국도 여기에 뛰어들어 이제 100억달러 고지를 눈앞에 두고 진격 중이다. 지난 20년간 농식품 수출이 성장률로만 따지면 공산품의 1.7배가 넘는다. 인삼류와 김치가 선봉에 서고 배와 딸기, 파프리카, 포도, 유자 등이 그 뒤를 따르며 최근에는 김, 라면, 떡이 주력군에 합류했다.
한국은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가공품 형태의 농식품 수출에 경쟁력이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농업생산자와 수출기업의 유기적인 협력, 그리고 K드라마 K팝 K푸드로 이어지는 한류 채널이 함께 어우러지면 막강한 진용을 갖추게 된다.
과거 농산물이 수출 전선의 선발대가 됐듯 이제는 농식품 수출이 농업 활로 개척의 첨병이 됐으면 좋겠다. 전 세계 자동차, 반도체, 철강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농식품 시장. 수출로 나라를 일으켜 세운 우리에겐 또 다른 기회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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