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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박윤재 "그랑프리상은 발레와 내가 더 친해졌다는 증거"

입력 2025-02-12 18:32   수정 2025-09-15 15:57


"콩쿠르를 마치고 등교하니 친구들이 '신이 왔다' '좋은 기운 받게 몸 한번 만져보자'라고 장난을 쳤어요(웃음)."

세계적인 발레 콩쿠르 '프리 드 로잔'에서 한국인 발레리노로 처음 1위(그랑프리) 기록을 쓴 서울예고 박윤재(16)군은 12일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교실 풍경을 이같이 전했다. 서울예고 교문에는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글로벌 무대에서 최고 기량을 뽐낸 발레리노지만, 교실의 박윤재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밝은 십대 소년 그 자체였다. 박윤재는 "결선에 오르는 것도 예상치 못했는데 그랑프리 수상까지 하게 돼 벅찼다"며 "콩쿠르 당시 여러 발레학교와 컴퍼니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았고 향후 계획을 위해 천천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서울예고에서 그를 가르친 교사 안윤희와 리앙시후아이가 함께 했다. 리앙시후아이는 대만출신 발레리노로 그 역시 프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인물. 박윤재는 "선생님들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받아 큰 상을 받았다"며 "이런 선생님들께 배웠으니 어디에서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교사들에게 수상의 공로를 돌렸다.

"리앙시후아이 선생님은 무대 위에서 무용수가 즐기는 방법을 잘 알려주셨어요. 스스로 즐기지 못하면 관객과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고, 로잔 무대에서 제가 그렇게 춤출 수 있게 용기를 주셨어요."

교사 리앙시후아이는 "윤재는 더 가르칠 테크닉이 없는 학생이었기에 나는 그저 옆에서 내면을더 잘 표현하도록 북돋았을 뿐"이라며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도록 오히려 내가 더 노력했다"며 웃었다.

로잔이 유독 그에게 꿈의 무대였던 이유는 이 콩쿠르가 배출한 걸출한 무용수들을 보며 발레리노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신체 조건이 다양한 세계 각국의 무용수들을 보며 자신의 강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노력으로 극복해나가는 데에도 콩쿠르의 과거 영상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발레계가 선호하는 신체 조건을 갖추면 좋지만 무용수들은 각자 개성이 두드러질 때 더 빛나는 거 같아요. 저는 평발이라 쥐가 많이 나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다리가 두껍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컴플렉스였는데, 로잔에서는 제 다리가 예쁘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박윤재는 로잔에서 "무용수 자신만의 매력과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매력이 신체조건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5살때 누나를 따라 놀이처럼 발레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프로 발레리노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는 "발레에만 집중하다보니 한눈 팔 겨를이 없었고, 딱히 취미도 없다"고 했다. 누나도 발레를 전공하다보니 부모님의 관심사도 '발레'다. 박윤재는 "부모님이 파리오페라발레단 무대를 좋아하셔서 어린시절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롤모델로는 이 발레단에 있었던 실비 길렘을 꼽고 싶다"고 했다.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프리 드 로잔에서 우승했다는 건 박윤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랑프리상은 발레와 저의 사이를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발레랑 친해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매일 나를 깎아가며 고통스럽게 연습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라서요. 그랑프리상은 발레와 제가 친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프로 무대에서 그가 욕심내는 레퍼토리와 인물은 무엇일까. "저는 돈키호테의 남자 주인공 바질 역할을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어요. 기존 클래식 발레의 왕자와는 다른 매력을 가져서인데요. 열정적인 에너지와 바질만이 뽐낼 수 있는 야성적인 모습을 꼭 표현해보고 싶어요."

발레는 순수 예술 가운데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보다는 마이너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발레라는 예술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박윤재는 의젓하게 답했다. "발레 무용수가 행복하게 춤을 추면 관객도 행복해지고, 슬프게 추면 슬픔이 전이돼요. 감정적 소통이 발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나라가 어려울 때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발레를 통해 감정을 정화하고 긍정적인 기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감을 얻고 싶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치유하고 싶을 때…. 발레는 언제나 필요한 예술이에요."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그가 꿈꾸는 무용수란 어떤 것일까.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요. 무용수는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제 모습을 별에 비유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발레 무용수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질문에는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응원의 말이기도 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에 후회말고, 의심말자. 나를 믿고 쭉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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