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니커즈에 캐주얼한 팬츠를 입고 티셔츠에 조끼를 걸친 그가 무대 위로 뛰어들듯 등장하자 관객은 열띤 박수로 환영했다. 수십 년간 할리우드에서 경력을 쌓아온 감독이라기보다 영화 학교를 막 졸업하고 자신의 첫 영화를 선보이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청년 감독처럼 보였다. 마라톤 일정을 소화하고도 영화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이는 수십 년간 공들인 자신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못하도록 한 할리우드의 비즈니스맨을 향한 항변으로 변하기도 했다.
지난 8일 행사가 열린 씨네큐브 객석은 젊은 관객으로 가득 찼다. 앞다퉈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18년 만에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으로 극장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타셈 싱 감독이다.

“보통은 이야기를 먼저 준비하고 거기에 적합한 레퍼런스를 찾죠. 하지만 저는 저만의 시각적 모티브를 먼저 수집하고, 나중에 그것들이 연결되기 위한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뮤직비디오와 광고 감독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을 내놓기 전에도 특유의 미장센으로 유명했다. 영화 ‘더 셀’(2000)에서는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과 오드 너드럼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미장센을 선보였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은 다르다. 이날 싱 감독은 이 영화의 출발점이 자신이 오랜 기간 모아온 시각적 모티브라고 말했다. 그 모티브가 구현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17년이라는 시간을 썼다.
그가 만약 공간의 장엄함을 담아내려 한 것이라면 광각렌즈와 항공 촬영 같은 역동적 무빙이 두드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초망원렌즈를 활용해 공간의 깊이감을 압축했다.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 찬드 바오리의 수많은 계단에서 검은 병사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광각으로 촬영됐다면 그저 공간의 특수성에 기댄 평범한 액션 장면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평면적으로 담아냈다. 수많은 계단이 만들어내는 음영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은 마치 하나의 화폭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낸 장면보다 외려 더 초현실적이다.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죠. 하지만 ‘더 폴’ 같은 작품을 만들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영화를 만들 때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하는지니까요.”
일곱 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다는 한 관객이 지금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며 싱 감독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방법에 관해 물었다. 싱 감독은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을 가장 먼저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과 오랜 기간 함께한 의상 디자이너 이시오카 에이코(2012년 작고)를 향해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녀가 제시하는 이미지의 영감은 다른 작품이 아니라 곤충 같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데서 온 것이었습니다. 창조적 생각을 해야 할 때 사람들은 ‘상자 밖으로 벗어나라’고 하죠. 하지만 그녀에겐 애초에 그런 박스나 틀조차 없었습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에는 조르조 데 키리코 그림처럼 아치 구조와 주랑 현관이 주요한 공간적 모티브로 등장한다. 여러 국가에서 촬영했음에도 하나의 지역에서 찍은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발견한 자신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 솟아오른 형이상학적 모티브를 구현할 매개체(공간)를 세상 구석구석 찾아다닌 결과다.
그는 행사가 끝날 때쯤 관객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엔딩에 관한 물음이었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결말은 관객이 느끼고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임을 각인시켰다. 이 영화가 18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한국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 발견한 존재의 의미를 위해 모든 것을 내건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정보다 광기에 가깝다. 배우 리 페이스가 한 인터뷰에서 그를 “미쳤다(insane)”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가 영화에서 키 컬러로 활용한 선홍색같이 그의 광기 어린 열정은 한국에서 다시 한번 불타오르고 있다.
박정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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