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만여 명의 기쿠요마치는 1년 전만 해도 온통 양배추밭이었다. 이곳에 TSMC가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서 이 일대는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다. 그중에서도 규슈는 일본 반도체산업의 메카였다. 하지만 미·일 무역 마찰과 한국, 대만 등의 부상으로 일본 반도체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급속히 쇠퇴했다. 그런 일본이 절치부심 끝에 ‘반도체 부활’을 선언하며 심혈을 기울여 유치한 게 TSMC 공장이다.
일본 정부는 TSMC 공장을 붙잡기 위해 1공장 건설비의 절반에 가까운 4760억엔을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TSMC도 1년 365일 내내 24시간 ‘광속 공사’를 해 평소라면 5년 걸릴 반도체 공장을 20개월 만에 지었다. 그 결과 1공장은 가동 시작 10개월 만인 지난해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 TSMC는 여기에 더해 1공장 바로 옆에 2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공장은 6㎚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며, 2027년 말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TSMC 효과’로 소니그룹, 도쿄일렉트론, 미쓰비시전기, 후지필름 등이 구마모토로 집결하고 있다. 규슈 전역으로 보면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앰코테크놀로지, 미쓰비시케미컬, 섬코, 롬 등도 몰려들었다. TSMC가 진출을 결정한 2021년부터 규슈 지역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는 100건을 돌파했고, 투자액은 5조엔(약 47조5000억원)을 넘었다. 기무라 다카시 구마모토현 지사는 “규슈는 오랜 기간 갈라파고스처럼 숨어 있었지만, TSMC를 유치한 뒤 기업 투자 건수가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을 밀어낸 한국 반도체산업은 도리어 위기다. 주 52시간 근무에 예외를 두는 방안을 두고 여야 합의가 늦어져 반도체 특별법조차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구마모토=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