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그전에는 ‘장애자’로 불렸다. 서울올림픽 때만 해도 공식 표기가 ‘장애자올림픽’이었다. 장애자란 말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말을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새로 제시된 말은 ‘장애인’이었다. 이후 1989년 장애자복지법을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이 나오면서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공식 용어로 등장했다. 나중에 ‘노숙자’가 ‘노숙인’으로 바뀌게 된 배경도 비슷하다.
이런 사례는 우리말에서 ‘-자’와 ‘-인’에 대한 언어적 차별 인식이 사회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바뀌어왔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 언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같은 말이라도 ‘-자’보다 ‘-인’을 좀 더 품위 있는 말로 여기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낮춤말이 아니었던 장님과 벙어리, 귀머거리 등이 시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청각장애인으로 바뀐 데도 그런 과정과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특히 이들 말에선 두 가지 문제 제기로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 원래 평어인데, 즉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닌데 하향식으로 대체어가 제시됐다는 점에서 오는 저항감이다. 대표적인 게 ‘장님’이다. 1990년대 초까진 장님이 오히려 소경의 높임말이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에도 낮잡는다는 뜻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어느 순간 이들을 낮잡는 말로 처리했고 국어사전도 이를 반영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쓰지 말아야 할 말로 평가된 셈이다.
이에 따라 수많은 속담에 쓰인 말을 어찌 풀어야 할 것인지 난감해졌다. 우리말에서 ‘장님’으로 시작하는 속담만도 30개가 넘는다. ‘앉은뱅이책상’ 등 파생어와 수사적 표현들은 또 어찌해야 할까?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점에서 우리말 어휘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또 하나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한자어는 대접해 부르는 말, 고상한 말이고 고유어는 낮춰 부르는 말이 돼 순우리말을 격하시켰다는 비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역시 우리말 진흥과 육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이제 차별어에 대한 논의를 한 단계 고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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