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지엠(GM) 노동조합에서 불거진 조합비 횡령 의혹을 계기로 노조가 정부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규제를 편법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노조원의 일부 수당을 활용해 노조의 유급 전임자 수를 법률이 정한 한도 이상으로 늘리고 있다는 주장이다.21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GM 노조 집행부는 최근 ‘지부장 성명서’에서 “‘무급 전임자’에게 월급을 주는 ‘조합비2’ 통장에서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1억2000만원이 이유 없이 인출된 정황을 최근 적발했다”며 “당시 재정을 담당한 간부 등 2명을 경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GM 노조가 당초 성명서에서 공개한 내용은 노조 간부의 조합비 횡령을 자체 적발한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타임오프 규제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타임오프 제도는 노조 간부(전임자)가 노조 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하고 사용자가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노조 규모에 비례해 면제 시간과 인원 한도를 법으로 정한다. 노조가 성명서에 밝힌 조합비2 계좌는 이런 타임오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국GM은 법에서 정한 인원을 초과한 ‘전임자’를 회사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 ‘무급 전임자’로 두고 있다. 이들 무급 전임자의 임금은 개별 노조원의 수당 명목으로 회사에서 받는다. 노조 요구에 따라 만든 직원들의 특정 수당이 노조의 조합비2 통장으로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회사가 노조에 자금을 지원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는데, 노조 조합원의 수당을 통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런 규제를 피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 입장에서는 본인의 일부 수당을 본인 동의 없이 노조 전임자에게 준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며 “정부 단속을 의식해 쉬쉬하다 보니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GM 노조의 이번 횡령 사건도 2년 동안 적발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 현장에선 “타임오프 규제를 회피하는 편법행위가 상당수 산업 현장에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 경주 지역의 한 제조업체 대표는 “내로라하는 주요 국내 대기업 노조는 물론 울산·경주·경기 지역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산하 중견 제조업체 노조도 전임자를 늘리기 위해 별도의 조합 통장을 이용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법이 정한 전임자 면제 시간과 인원 한도를 넘겨 임금을 주는 유급 전임자를 두면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윤석열 정부는 법정 한도를 넘겨 유급 전임자를 두는 관행이 지속되자 2023년 사업장 전수조사에 나서며 대대적인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이런 정부 조치 후 별도의 조합 통장을 사용해 타임오프 규제를 회피하는 노조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 노조 담당 부사장은 “정부가 타임오프제를 어긴 ‘꼼수 전임자’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결과 한국GM과 같은 편법행위가 산업 현장에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하기엔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내부자의 신고 없이는 정부가 조합비 항목을 들여다볼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다.
곽용희/김보형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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