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공연예술의 산실 역할을 해온 케네디센터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 기조가 문화계로 확산하며 케네디센터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6일 미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케네디센터 임시 사무국장으로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북한·베네수엘라 특임대사를 임명한 이후 1주일간 티켓 판매액이 전주 대비 50% 가까이 급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신임 이사장을 맡은 이후 다양성을 강조한 내용의 어린이 뮤지컬 ‘핀(Finn)’, 성소수자 합창단 공연이 취소되는 등 케네디센터 운영 전반에 변화가 일어난 영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케네디센터가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장 남자 공연을 올린 것을 거론하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1971년 설립된 케네디센터는 전통적으로 여야가 균형을 이뤄온 상징적인 공간이다. 1958년 공화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이 워싱턴DC에 국립문화센터를 설립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민주당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센터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을 주도했다. 오랜 기간 초당적 이사회를 구성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18명의 이사를 해임하고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JD 밴스 부통령의 배우자 우샤 여사 등 충성파를 대거 기용해 이런 암묵적인 룰을 깼다.
이에 예술가들은 항의의 표시로 성명을 내거나 행동에 나섰다. 배우이자 작가, 코미디언인 이사 레이와 록 밴드 로 컷 코니는 케네디센터에서 예정된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가수이자 작곡가인 벤 폴드는 워싱턴DC의 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 고문직에서 사임했다.
이번 사태로 케네디센터가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케네디센터의 연간 예산 2억6800만달러 중 정부 예산은 4300만달러로 전체의 약 16%에 그친다. 나머지는 티켓 판매 수익과 개인, 기업, 재단 기부금 등의 재원으로 메운다. 가디언은 “예술가들은 공연을 취소하고 기부자들은 후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관객은 보이콧 선언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이는 케네디센터 54년 역사상 가장 큰 위기”라고 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