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여당이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제도를 손보기로 한 것은 '소규모 태양광'만 난립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량이 2017년 8.7GW(기가와트)에서 2023년 30GW로 꾸준히 늘어나는 동안 새로 생겨난 재생에너지원 중 태양광 발전의 비중은 90%에 이른다. 반면 풍력, 수력, 바이오 등 다른 에너지원의 비중은 오히려 축소됐다.
이는 RPS가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현물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 초기인 2000년대 REC 거래제는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유도한다는 장점으로 여러 나라에서 각광받았다. 하지만 곧 다른 나라들은 REC 가격불안정, 국민부담 증가 등의 이유로 폐지했고 지금까지 REC 거래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는 발전사들이 이 비율을 맞추지 못할 경우엔 외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 의무를 떼울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REC가 거래되는 현물시장의 가격 등락 신호에 따라 일반 재생사업자의 신규 투자 결정을 이끌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전력 시장에서 전기를 판매해 받는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 더해 현물시장에서 REC 판매하며 추가 수익을 올렸다.
이 같은 구조는 '소규모 태양광 발전 쏠림'을 심화시켰다. 소규모 자본만 있으면 되는 소형 태양광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용이했던 반면, 더 큰 자금이 필요한 풍력과 중·대규모 태양광 투자는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풍력 등 중·대규모 발전사업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정부가 보증하는 입찰제 하에서만 가능해지면서다. 현물 REC 시장도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가 내놓는 물량으로 채워졌다.
애초에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만 바라보고 REC 제도를 짰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의 발전량 1MWh당 1씩 지급되는데, 정부가 일반부지 소규모 태양광발전에 대해선 더 높은 가중치(1~1.2)를 부여하고 있어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3MW 이상 설비에 대해선 가중치를 0.8로 매겨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만 REC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정부 역할은 발전사와 일반 재생사업자 간에 단순히 REC를 중개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재생에너지 공급의무를 가진 대형 발전사들도 자체적으로 신재생발전을 늘리기 보단 'REC 외부조달'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재 대형 발전사들이 신규로 공급하는 재생에너지 비중은 10% 대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초기 투자금을 다 회수한 뒤에도 REC 판매로 더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는 문제도 커졌다.
이 사이 국민 부담은 증폭됐다.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제18조의 11)에 따라 한국전력공사는 산하 발전 공기업의 REC 구매 비용 전액을 보전해주는데, 최근 연간 정산 규모는 3~4조원에 달한다. 한전의 REC 정산 비용은 소비자용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다.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들이 'REC 장사'를 통해 큰 이익을 얻는 동안 한전의 부채는 2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 관계자는 "한전이 자회사인 발전사들의 REC 구매 비용을 정산해주는 현행 RPS 체계에서는 REC의 가격 변동성에 따라 정산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는 문제가 있었다"며 "REC가 폐지되면 이 같은 중간 정산 절차가 사라짐에 따라 한전의 구매 비용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되고 세금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100(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이니셔티브를 이행하기 위해 REC를 구매해오던 민간 기업들의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조상민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입찰제 하에서는 낙찰받은 발전사·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 새로운 형태의 발전 정보 인증서가 발급되고 이를 기업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인증서 판매 가격을 고려해 응찰하기 때문에 인증서 가격이 현재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입찰제에서는 안보 지표 등이 추가돼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 등은 '발전원별 입찰 시장'을 각각 여는 방식의 개편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현행 RPS 제도가 문제가 있고, REC 시장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상당수도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혜 민주당 의원도 별도 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각론에서 REC 장사를 할 수 없게 되는 소규모 태양광 사업체들에 대한 이익 보전 방식을 놓고 여야 간 입장이 갈릴 가능성이 크다. 소규모 태양광사업자들의 극심한 반발도 예상된다.
김리안/김대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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