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장기업의 유상증자에 우려를 내비쳤다. 주주 배정 방식이나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가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한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금감원이 관련 증권신고서 심사를 강화한 배경이다. 이 원장의 증자에 대한 인식이 유례없는 유상증자 중점심사 규제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사실상 상장기업의 유상증자 인허가권을 금감원이 쥐겠다는 것이다.

시장에선 금감원의 월권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 고유의 경영 활동과 연관된 내용까지 감독당국이 직접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로 하면서다. 미국 등 선진국 증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강도 높은 규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자 규모 및 증자 비율 등을 고려해 주식가치 희석 가능성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영권 분쟁 소송 중이거나 연관이 없는 신사업 투자 목적의 유상증자도 중점심사 대상이다. 최근 3년 연속 재무 실적이 부실하거나 재무구조가 악화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주관사가 제 역할을 못한 것으로 판단될 때도 중점심사 대상에 선정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주식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유상증자는 없을뿐더러 재무 사정이 안 좋은 회사가 유상증자를 실시하기 마련”이라며 “사실상 모든 유상증자에 금감원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점심사 대상 유상증자로 선정되면 대면 협의 등을 포함해 IPO 증권신고서 심사 절차를 준용해 심사를 진행한다. 중점심사 유상증자 대상인 회사는 유상증자의 당위성과 주주 소통 절차, 기업 실사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점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사유와 관련해 해당 이슈가 발생한 경위와 대응 방안 등을 충실히 기재해야 한다. 금감원이 유상증자 관련 물밑 규제를 명문화한 것이다.
각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성적 기준 역시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다. 중점심사 대상인지 여부를 전적으로 금감원이 판단할 수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도 감독당국이 증권신고서 심사를 하지만 형식을 볼 뿐 실질까지 판단하는 경우는 없다”며 “잘못된 유상증자를 일벌백계하기보단 애초에 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수요와 공급으로 해결할 문제에 금감원이 색안경을 끼고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지적이다. 명분 없는 유상증자라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외면받기 마련이다.
이 원장의 유상증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많다. 유상증자는 주가 희석으로 단기적으로 주가에 악재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새 성장동력을 장착해 호재가 될 수 있다. 증자로 주가가 단기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자금 조달 자체를 가로막는 건 자본시장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증자가 막혀 기업의 성장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오히려 주주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금감원이 시장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권력기관이 됐다는 날 선 비판도 나온다. 금감원이 중점 심사 항목이 충실히 기재되지 않은 유상증자에 대해선 무제한 정정 요구를 공식화하면서다. 정정 요구는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사실상 금감원의 인허가권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상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정정할 수 있는 건 중요 사항이 거짓 기재 또는 미기재됐거나 불분명한 경우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증자를 승인하거나 허가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시장의 우려처럼 되지 않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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