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정도면 독립문이 아니라 ‘녹립문’ 아닌가요.”
106주년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은 찌든 때와 녹물 자국이 가득한 흉한 몰골이었다. 남편과 장 보러 가는 길에 들렀다는 인근 무악동 주민 이모씨(60)는 “근처에 살아 자주 지나다니는데 이런 상태로 방치된 지 한참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에서 온 관광객인 제인 브론스타인 앨런 씨(22)와 제이콥 마틴 씨(24)도 “역사적 기념물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독립문은 1897년 11월 서재필 박사를 비롯한 독립협회 주도로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 기념물이다. 한쪽은 한글 가로쓰기로 ‘독립문’이, 다른 쪽에는 한자로 ‘獨立門’이 돌 위에 음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아관파천 직후인 1896년 11월 착공해 다음해 11월 마무리됐고, 1963년 1월 대한민국 사적으로 등록됐다. 당초 독립문사거리 중앙에 세워졌으나 1979년 성산대로 확장 공사를 거치며 현 위치인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 초입에 자리 잡았다.
독립문의 실질적 관리 주체는 기초 지자체인 서대문구다. 하지만 독립문과 같은 국가유산은 단순 물 세척을 하더라도 전문업체를 선정하고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종로구와 서울시 관리하의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동상 등 정기적 세척 관리가 가능한 역사적 조형물과 달리 긴 행정 절차가 필요한 이유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문화유산 관리 보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서대문구도 지난해 독립문 정비 공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유산청에 사업 예산을 신청했다. 이후 지난해 1월 국가유산청의 승인을 거쳐 같은 해 연말 국회에서 국비 4억7000만원, 시·구비 2억1000만원을 포함한 총 6억8000만원이 책정됐다.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 등을 거쳐 착공은 일러도 9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같은 예산 신청마저 늦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독립문 정비 작업이 이뤄진 건 2015년 6월이다. 서대문구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연 2회 이상 정기 점검을 하고 있는데 2019년에 오염도가 높다고 판단했으나 용역 작업 등에 6년가량이 더 걸렸다”고 해명했다. 구청 점검이 육안으로만 이뤄지고 객관적인 오염도 측정 기준이나 장비조차 없는 실정이다.
즉각적인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급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화유산에 대해선 ‘긴급문화유산복구예산’이 편성되지만, 산사태와 폭우·태풍·화재 등 자연재해 영향이 있을 때만 적용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녹물 등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될지 현실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며 “이번 사안은 약 2년간의 행정 절차를 거치며 불가피한 시차가 발생했다”고 했다.
오유림/안시욱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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