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의 원조는 중국이다. 고대 은왕조에서 상아 젓가락을 쓰긴 했지만 대부분 대나무로 만든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 그래서 젓가락을 뜻하는 한자 ‘저(箸)’에는 대나무 죽(竹) 부수가 들어가 있다.‘젓가락 하면 나무젓가락’이란 공식을 깬 건 한국이다. 뜨거운 국과 고기를 많이 먹는 한국인에겐 고온과 무게에 약한 나무젓가락보다 쇠젓가락이 유용했다. 내구성이 강한 쇠젓가락은 운동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다. 나무젓가락보다 손뼈와 근육·관절을 더 움직이게 하고 두뇌 활동을 더 늘린다. 영남대병원 조사 결과 쇠젓가락은 나무젓가락과 포크에 비해 각각 1.6배, 2배 정도 뇌를 활성화했다. 또 쇠젓가락은 잘 미끄러져 콩 같은 작은 물체를 집을 때 나무젓가락보다 더 정교한 손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쇠젓가락을 오래전부터 쓴 건 아니다. 근대화 이전엔 구리와 나무젓가락을 혼용했고 현재의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퍼진 건 1970년대다. 공교롭게도 한국 제조업의 성장 시기와 맞물린다. 철강산업 발전으로 목재보다 철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던 때다. 쇠젓가락의 대중화와 함께 한국은 ‘철공예’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산업의 패권을 쥐게 됐다.
젓가락은 K제조업의 해외 진출에도 영향을 줬다. 삼성이 베트남을 해외 생산기지로 낙점할 때 젓가락이 주요 기준이 된 건 유명한 일화다. 베트남이 한국 다음으로 쇠젓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여서 손기술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베트남이 한국처럼 ‘경박단소’ 조립산업에 강하다는 게 입증되면서 많은 국내 기업이 삼성을 뒤따랐다.
이뿐만 아니다. 경기 침체로 자국에서 소화하지 못한 제품을 한국으로 밀어내고 최근엔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우회 수출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무차별적 확장에 한국 제조업은 백척간두의 위기다.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들은 존폐 기로에 서 있다.
그래도 다 죽으란 법은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기업이 적지 않다. 중국의 저가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수탁생산을 늘리고 중국이 하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곳이 부지기수다. 한국인의 혼을 갈아 넣어 우리 감각과 기술을 살린 제품은 중국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오래 버틸 수 있다. ‘한국형 젓가락’인 쇠젓가락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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