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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구건서의 은퇴사용설명서] 존엄하게 죽고 싶은 욕심

입력 2025-03-05 17:49   수정 2025-03-05 17:50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는다. 인간도 죽음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른다. 나이가 드니 잘 사는 것과 함께 잘 죽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옛 어른들이 얘기하던 ‘자는 듯이 죽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보통 90살까지는 살고,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오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지만 긴 시간을 병상이나 요양원에서 보낸다면 잘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보통 10년 정도는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병원신세를 진다고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다. 오랜 투병기간은 본인이 가장 고통스럽지만, 지켜보는 자식도 힘들다. 또 병원비와 간병비 등 많은 의료 비용이 들어간다. 노인들의 희망이 ‘9988234’라고 하지 않는가. 99살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일 앓다가 사망하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잘 죽을 수는 없을까? 이러한 고민이 존엄한 죽음이라는 주제로 논의되고 있다.

존엄한 죽음(존엄사)이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처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즉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넓게 보면 ‘안락사’라는 표현이 있으며,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에 비해 환자의 고통을 연장시키는데 불과한 연명장치를 제거하거나 영양 공급·치료를 중지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TV에서도 스위스 등에서 허용하는 존엄사에 대한 내용이 자주 방송된다. 네덜란드가 2001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 관련 법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기계도 소개된다. 안락사 조력단체도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판례나 법으로 엄격한 요건 아래 존엄사와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우리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이로 인한 가족들 간의 윤리적인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는 간간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은 2009년 2월, 서울 지방법원이 병원에게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노인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일명 ‘김할머니 사건’ 판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연명장치에 의존해 병석에 있는 말기 환자의 임종과 그것을 맞게 하는 방식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의료계, 종교계, 학계, 시민 단체대표들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2019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이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중단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법시행 이후 필자, 아내, 어머님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스스로 잘 죽기 위한 첫 발자국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은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안락사를 허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보장해야 되지 않을까? ‘존엄사’란 단지 인공음식물투여장치나 인공호흡기와 같은 인공연명장치에 의존해 육체적 생명만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상실한 삶의 모습이라고 판단하고, 인공연명장치를 제거하고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존엄사가 자칫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남용될 수 있으므로 진료 중단은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한해 허용돼야 한다.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한 이유는 다른 특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법에서 우리나라와 달리 자살관여죄는 원칙적으로 불가벌이고, 이기적인 동기로 관여한 경우에만 처벌하기 때문이다(스위스형법 제115조). 원칙적으로 자살관여죄가 불가벌인 이유는 헌법상 자살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범인 교사범과 방조범은 정범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정범이 스스로 자살하는 사람이고, 자살을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범도 처벌하지 않는 형법의 공범종속성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2001년 최초로 안락사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안락사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을 새로 촉발시켰는데, 이 법은 ① 환자들이 치유될 수 없고, ② 환자가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안락사에 동의하며, ③ 환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클 경우 등 3가지에 부합될 경우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2024년 11월, 영국에서도 안락사 관련 법률이 의회를 통과했다. 주요한 내용은 신청자가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말기 질환 진단을 받았고 6개월 이내에 사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절차상 두 명의 의사와 한 명의 판사가 승인해야 하며 치명적인 약물은 자가 투여해야 한다. 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65%가 찬성을, 13%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미 몇몇 유럽 국가와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10개 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됐다. 존엄사에 대한 찬성 여론이 80%를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도 이제 존엄사 또는 안락사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잘 죽기 위해 더 잘 살아야겠다.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죽을 때 편안하게 좋은 세상에서 잘 살았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싶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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