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것이 차고 넘치지만 내가 어릴 적엔 먹고사는 게 일이었다. 특히 귤, 바나나 같은 과일은 일반 가정에서 보기 힘들었다. 그땐 귤나무 몇 그루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 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 요즘 사람들에겐 시대극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겠지만 당시 그 귀한 과일은 나를 사업의 길로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처음으로 놀러 간 친구 집엔 생전 맛본 적 없는 귤이 상자째 놓여 있었다. 한 알을 먹고 눈이 휘둥그레지자 친구 어머니께선 마음껏 먹으라며 귤 한 바구니를 거실에 내주셨다. 아버지가 대체 무슨 일을 하시기에 이렇게 부자가 된 걸까? 친구에게 물으니 사업을 하신다는 말이 돌아왔다. ‘사업’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군 제대 후 인천의 한 해운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화물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수많은 트럭이 쉴 새 없이 물자를 실어 날랐다. 1980년대 초반 인천항은 근대적 항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부두 설비를 확장하는 시기였다. 규모가 커진 부두에 물자가 쏟아져 들어와 각지로 옮겨졌다. 항구도시 인천의 지리적 특성을 잘 활용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1년간 안 쓰고 모은 200만원을 털어 8t 덤프트럭 한 대를 구입했다. 첫 사업 밑천이었다.
귤 한 상자가 나를 사업의 길로 이끌었다면, 바다는 내게 성장의 기회가 됐다.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물류의 흐름을 들여다보자 기회가 눈에 들어왔다. 기회를 살린 덕에 5년 만에 덤프와 카고를 섞어 30여 대의 트럭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인천의 잠재력을 활용해 기틀을 다진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인천에 본사를 두고 중공업, 화학,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육성하면 지역 경제가 발전한다. 예를 들어 인천항 주변에선 창고업, 운송업 등이 활발할 것이다. 단지 물류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산업을 통해 지역 경쟁력이 강화되면 다른 산업과의 협력이 이뤄지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 물류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정보기술(IT) 업체와의 협업도 가능해진다.
한국은 영토가 크지 않지만 지역별로 개성이 뚜렷한 편이다. 각 지역의 고유 자원을 바탕으로 특화 산업을 발전시키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고 지역 간 균형 발전도 가능해진다. 지역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이 힘을 합쳐 산업군을 형성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단순히 한 지역이 성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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