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가 미국 최고 권위 영화시상식인 아카데미(오스카상)에서 5관왕을 차지했다. 영화를 연출한 숀 베이커 감독은 명실상부 거장의 반열에 섰다. 영화 ‘마티’(1955)의 델버트 만, ‘기생충’(2019)의 봉준호와 함께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세 번째 감독에 이름을 올렸다.영화판을 흔든 숀 베이커 신드롬을 이쯤에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고작 600만달러짜리 저예산 독립영화를 들고 제작비로 1억달러쯤 쓰는 게 당연한 할리우드 대작 틈바구니에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선 “아노라 제작비가 경쟁작의 케이터링(밥차) 예산보다 적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베이커는 필모그래피를 비주류의 삶을 그린 독립영화로 채워 온 ‘언더독’이다. 남들은 하루 대여료 1000만원이 넘는 카메라를 쓸 때 아이폰을 들고 영화를 찍은 적도 있다. 굳이 고된 독립영화의 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일정 수준의 예산을 넘기면 편집권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독립영화가 창의성과 다양성의 원천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외골수가 ‘오스카 신데렐라’로 다시 태어난 건 관객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조금 성기더라도 독보적인 미학을 보여주는 독립·예술영화에 열광할 줄 아는 관객이 늘었다. ‘브루탈리스트’(960만달러) 등 할리우드 기준으로 저예산에 속하는 작품들이 ‘아노라’와 함께 올해 오스카를 주름잡은 배경이다.
그래서일까. 베이커 감독은 오스카를 거머쥔 채 “독립영화를 제작한다면 계속 만들라. 그 증거가 바로 이 트로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외침이 한국 영화계에까지 닿을지는 미지수다. ‘서브스턴스’가 50만 관객을 넘기는 흥행질주를 하는 등 국내에서도 독립·예술영화를 찾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어째 독립영화가 설 곳은 줄어드는 분위기라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은 68곳에 불과하다. 2021년 542개이던 전국 극장 수가 지난해 570개로 늘었지만,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은 1개 줄었을 정도로 성장이 멈췄다.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보니 한국 독립·예술영화 개봉 편수도 2021년 151편에서 지난해 121편으로 줄었다.
최근 국내 최대 독립영화제인 서울독립영화제는 영진위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50년간 이어진 영화제에 대한 예산 지원을 영진위가 지난해부터 전액 삭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예산이 대폭 줄어 존폐 기로에 놓였다. 할리우드엔 독립영화의 봄이 왔지만, 한국 독립영화판은 삭풍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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