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교향악단과 도쿄필하모닉이 지난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났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한 프로젝트로 전날 일본 도쿄 오페라시티에서도 합동공연을 했다. 1부는 한국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일본 피아니스트 이가라시 가오루코가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다. 2부에서는 말러 교향곡 1번이 이어졌다. KBS교향악단 단원 56명, 도쿄필하모닉 단원 55명이 함께하며 물리적인 균형을 맞췄고, 지휘자 정명훈이 지휘를 맡아 이들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켰다.
성과도 대단했다. 일본 매거진 ‘음악의 벗’에선 매년 평단이 최고 공연을 꼽는데, 2023년엔 정명훈과 도쿄필하모닉의 베르디 ‘오셀로’가 2위를 차지했다. 당시 3위가 베를린필하모닉의 일본 공연이었으니 정명훈과 도쿄필하모닉이 얼마나 뛰어난 공연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날 합동공연의 1부는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두 피아니스트는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모차르트 작품 곳곳에 불을 비추며 작품을 조망했다. 서로의 소리를 듣는 과정도 즐거웠지만 오케스트라 각 악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합을 맞추는 일 자체가 즐거워 보였다. 앙코르는 두 피아니스트가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선택했다.
이어진 2부 말러 교향곡 1번에선 악장뿐만 아니라 주요 악기의 수석도 대부분 도쿄필하모닉 단원들이 맡았다. 도쿄필하모닉이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정명훈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정명훈이 원하는 음악이라면 한 몸 던져 헌신할 각오가 돼 있었다. 그 덕분에 지난 2월 KBS교향악단이 말러를 연주할 때보다 저음 현이 강화됐고, 목관악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매 순간 예쁘게 다듬어진 소리가 흘러나온 건 아니지만, 다른 악기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알려주는 건강한 소리였다. 이들은 KBS교향악단과 함께 멋지게 음악을 만들었다.
공연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KBS교향악단 56명, 도쿄필하모닉 55명, 이렇게 숫자를 기계적으로 맞춘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일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더 나은 연주를 담보할까. 아니면 더 대단한 예술적 성취가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두 시간 동안은 두 국가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언어와 국경을 초월했다. 음악 안에선 한국과 일본이 더 이상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롯데그룹 후원으로 마련됐다. 이날 리셉션 행사에 참석한 정명훈은 “두 나라가 음악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며 “의미 있는 공연을 후원해 준 기업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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