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와 보수 경제학자가 함께 쓴 책이니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균형이 잘 잡혀 있지 않겠습니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최근 1997년 처음 쓴 경제학원론의 7차 개정판(사진)을 냈다. 미시경제학과 재정학 분야의 대가인 이 교수는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다. 이명박·윤석열 정부를 특히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반면 거시경제 전문가인 이 총재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 교수의 비판을 받은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윤석열 정부에서 한은 총재를 맡았다.
이 교수는 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경제학원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라며 “정치적 입장 때문에 부딪친 적은 없다”고 말했다.이 교수와 이 총재의 ‘경제학원론’은 국내 학자가 쓴 경제학 입문 교과서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맨큐의 경제학’ 정도가 라이벌로 꼽힌다.
이 교수는 이번 개정판에서 소득분배 이론을 가다듬었다. ‘불평등도가 심화하면 다음 세대의 계층 이동성까지 악화한다’는 이른바 ‘위대한 개츠비 곡선’ 등을 새롭게 소개했다. 이 교수는 “내 자녀 세대는 더 좋은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 꺾이면서 불평등 문제에 대해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분배 확대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게끔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위기의 경제학’ 챕터에서 코로나 위기 이후의 상황을 보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일할 때보다 더 열심히 개정 작업에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책에서 “코로나 이후 다시 등장한 인플레이션은 거시경제학의 예측력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총수요보다 총공급의 변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썼다.
중앙은행 관련 이슈에도 상당 부분 할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도입한 ‘양적완화’ 정책,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화폐인 ‘CBDC’의 연구개발 현황 등이 담겼다.
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기술 혁신에 성공한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 모든 국가가 위기”라며 “제조업은 설비를 빠르게 들여오는 식으로 캐치업이 가능하지만 정보기술(IT) 분야는 마인드셋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선두주자를 따라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곱 살부터 수학고시를 보는 나라에서 AI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 인재가 나오기는 어렵다”며 “계산은 컴퓨터가 다 해준다는 전제하에 수학 교육을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 총재가 한은 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지역 비례 선발제에 대해선 이 교수도 “동의한다”고 했다.
2015년 정년을 맞은 이 교수는 지난해까지 10년간 명예교수로 이어오던 경제학원론 강의를 올해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41년 만에 교편을 내려놓은 그는 “시원섭섭한 마음은 있지만 후배들에게 강의 기회를 양보하기로 했다”며 “5년마다 새로운 이론을 반영해 교과서 개정판을 내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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