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둘러싼 격렬한 논란을 보면서 두 개의 근본적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모든 사람이 그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할 것으로 예단하느냐가 첫 번째다. 아무리 야당 추천, 좌 성향 후보자라고 해도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본령이다. 개인적 성향과 별개로 법률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법관과 사법부 독립의 핵심 덕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협의를 걷어찰 정도로 마 후보자 임명에 결사적이고 국민의힘은 그의 편향적 이력을 들어 극력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이쯤 되면 웬만한 강심장의 소유자라도 자진 사퇴할 법한데 당사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두 번째 질문은 왜 하필이면 이렇게 논쟁적 인물이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돼야 하느냐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에게 각각 3명씩 임명(선출)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대통령이나 각 정당은 임명 과정에 어느 정도의 정파성을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마 후보자 같은 문제적 인물을 추천한 사례는 거의 없다. 좌파 성향의 법관들 중에도 법조계 내 학식과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적지 않다. 법률과 판례도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뀌는 만큼 진보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잘못도 아니다. 그동안 야당이 진영 내 후보자를 임명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자질과 평판이 검증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헌재 구성이 논란을 빚게 된 계기는 사생결단식 정치대결과 잦은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급물살을 타면서다. 정치가 내 편, 네 편을 확실하게 가르고 나오자 헌재 후보자들의 풀(pool)은 진영별로 급속히 좁아졌다. 이 틈을 타 헌법적 세계관과 동떨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재판관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법관으로서의 품위와 자질은 부차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가문의 영광’을 쟁취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겠나.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특정 정파에 맹목적으로 충성한다는 것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온갖 종류의 공정성 투명성 문제에 휘말린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일반 법정으로 내려가면 더 심각하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판사들이 오히려 노골적으로 법을 경시하거나 소송 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한다. 재판을 질질 끌다가 아예 달아나버리는 모습도 목격한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이례적 속도전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정상적 재판 지연이 대비되면서 사법부 전체의 편향성이 부각된다. 국민들도 이제 그런 사정을 다 안다. 재판이 시작되면 해당 판사 성향이나 출신 지역에 대한 질문이 공공연할 정도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다루고 있는 항소심 재판부를 둘러싼 논란도 딱 그런 식이다. 많은 사람이 주심과 부심 판사들의 출신 지역을 따져 26일로 예정된 선고 결과를 점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판사 경질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헌법적 제약이다. 헌법은 사법권 독립을 위해 법관의 신분 보장을 명문화하고 있다. 내부 징계제도가 있긴 하지만 판결 자체에 대해선 큰 제재가 따르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들은 아예 내부 통제조차 받지 않는다. 절차적 흠결을 자초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하더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헌법이 국가 권위의 최상단에 있는 한, 재판소는 말 그대로 절대 권력이다. 국민들이 기절초풍할 정도의 ‘비리 복마전’ 선거관리위원회조차 헌법기관이라는 허울 뒤에 숨는 판이다. 대법관이 수장을 맡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작금의 사법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열쇠는 재판관들 손에 쥐어져 있다. 법관은 돈이 아니라 존경과 권위, 자리가 아니라 정의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인 헌재부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권력은 무서운 것이어서 누구든 가까이 가면 자신을 태우고 주변은 초토화된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헌법과 양심에 따른 개별적·독립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8 대 0’이란 카르텔적 판결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국가 구성원리로 삼은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정치 대신 법리를 따르는 것만이 헌재가 살고 사법부가 사는 길이다. 그래야 승복의 길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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