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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만난 ‘미키 17’, 그 확장성과 시너지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5-03-11 10:23   수정 2025-03-11 10:24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그런데 한 인물에게 이 질문이 반복적으로 주어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 속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에게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는 기분을 묻는다. 미키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수차례 죽었다가 매번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와 마카롱 가게를 열었다가 망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길 자처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미키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하다. 죽음을 피하러 갔지만 모순되게도 미키는 매번 죽었다가 다시 프린트되어 살아나는 ‘익스펜더블’이 되고 만다. 성공적인 행성 정착을 위한 ‘죽음의 하청화’, ‘위험의 외주화’ 대상이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키는 때론 피부가 타고, 때론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어간다. 그렇게 그는 죽음과 탄생을 반복, 급기야 17번째 복제인간인 미키 17과 18번째 복제인간인 미키 18에 이르게 된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으로 K무비 역사상 가장 영화 같은 순간을 만들어냈던 봉 감독의 ‘미키 17’이 2월 28일 공개됐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나온 신작인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에선 개봉 나흘 만에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해외에서도 호평이 나오고 있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봉준호 감독의 영어 영화 중 단연코 최고이자 가장 밀도 높다.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이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냉소적이고 폭력적이면서도 휴머니즘적이다. 봉준호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선사한다”고 평가했다.

‘미키 17’은 산업적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은 봉 감독의 첫 대형 할리우드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독창성, 그리고 할리우드의 자본력이 만나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앞으로 한국 창작자와 영화계가 나아갈 길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이다.
현실 직시하는 K무비 장점 고스란히

영화의 원작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이다. 제작은 ‘미나리’, ‘옥자’ 등을 만든 할리우드 영화사 플랜B가, 배급은 워너브라더스가 맡았다. 제작비는 1억1800만 달러(약 1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키 17’은 미국 영화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강점이 한껏 부각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는 늘 현실을 응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중에서도 인간 소외와 존엄성 문제, 노동착취, 계급 갈등, 사회구조적 문제 등을 꾸준히 다뤄왔다. 그 역사는 꽤 깊고 오래됐다. 봉 감독이 ‘기생충’을 만들 때 오마주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역시 그랬다. 1960년 개봉된 이 작품은 중산층으로 올라선 서울의 한 가정과 이들의 집에 들어간 하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가정에 깊숙이 침투하려는 하녀의 욕망, 하녀로 인해 다시 하층민으로 전락할까 두려워하는 가족의 불안이 교차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계층 갈등을 그렸다.

이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인 창작자들의 강점이기도 하다. 특히 봉 감독은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등 여러 작품을 통해 해당 주제들을 담아냈다. ‘미키 17’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재자 마셜(마크 러팔로)은 미키를 비롯해 사람들의 배급량을 제한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반으로 줄이기도 한다. 심지어 마셜은 타인의 목숨까지 하찮게 여긴다. 특히 미키의 경우 직업이 죽는 것이라는 이유로 그를 또다시 쉽게 죽이려 한다. 영화는 미키를 통해 억압당하는 자의 모습도 다각도에서 비춘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같은 몸에서 프린트된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미키 17은 최대한 참고 견디는 자아를, 미키 18은 기득권에 당당히 맞서는 자아를 갖고 있다. 봉 감독은 이를 통해 순응과 전복 사이를 오간다.

‘미키 17’은 묵직한 주제 의식을 봉 감독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난다. 영화 곳곳엔 우화적 요소와 블랙코미디가 결합되어 있다. 덕분에 전작들에 비해서도 쉽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미키가 익스펜더블이 되기 직전 이마에 난 뾰루지가 죽고 난 이후에도 반복되어 프린트 되지 않도록 미리 뾰루지를 짜 주는 장면에선 봉 감독의 작은 센스가 돋보인다. 원작엔 없는 새로운 창작 캐릭터인 일파(토니 콜렛)도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일파는 마셜의 부인으로 눈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음식 소스에만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서 소스는 곧 지배층의 특권이자 허세를 상징한다.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음식을 마음껏 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일파에겐 늘 풍족한 음식이 제공된다. 덕분에 그에겐 음식의 풍미를 더해줄 소스를 만드는 게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자 즐거움이 된다. 고상하고 친절한 척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안위와 즐거움만 생각하는 현대 사회 상류층의 이중적인 행태를 담았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미키 17’에서 가장 새로운 점은 봉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가 전면에 부각된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부터 미키와 나샤(나오미 애키)의 애정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이 관계는 이야기를 끝까지 지탱하는 중심축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나샤가 단순히 이성 간의 사랑을 상징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미키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미키에게 죽을 때의 기분을 묻지만 나샤만은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미키를 언제 어떻게 죽어도 괜찮은 소모품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죽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 것인지를 여실히 이해하고 진심을 다해 위로하려 한다. 미키가 죽을 때마다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를 통해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는 인류애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봉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도 ‘미키 17’이 더 관대하고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다시 살아나는 미키처럼


‘미키 17’은 이를 발판으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국 영화의 강점인 주제 의식을 잘 살리면서도 그동안 부진했던 SF 장르에 도전해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 영화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골고루 발전해 왔지만 유독 SF 장르에선 부진을 면치 못했다. 부족한 제작비, 기술적 한계로 인해 활발히 제작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막강한 자본력이 결합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미키 17’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 창작자가 우주를 배경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미키 17’ 사례는 영화의 글로벌 영토 확장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생충’을 계기로 한국인 창작자들에겐 각국에서 러브콜이 쏟아졌고 시간이 흘러 그 결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영화 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글로벌 영토 확장이 더욱 활발히 이뤄진다면 창작자들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

꽤 오랜 기간 한산했던 극장가가 ‘미키 17’ 덕분에 다시 들썩이고 있다.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미키처럼 영화계가 부활하고 보다 멀리 뻗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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