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한국조선해양이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를 투자한 건 2022년 11월이다. 업황이 좋아져 곳간이 넉넉해지자 ‘초격차 선박’ 개발로 눈을 돌릴 여유가 생겨서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SMR 추진선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땅 위에 세우는 SMR도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HD한국조선해양은 SMR 추진선 개발 계획을 놓지 않았다. 기존 선박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정도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시간이 흘러 SMR 기술이 하나둘 보완되자 HD한국조선해양은 칼을 빼들었다. 최대 3000억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SMR 추진선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사진)이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교환사채(EB) 발행으로 조달한 6000억원 가운데 3000억~40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기로 했다. SMR 추진선, 수소연료전지, 바이오 기술 개발에 쓴다. 이 중 SMR 추진선 개발에 배정된 몫은 2000억~3000억원. 지분 투자, 연구비 등을 포함한 수치다. 세상에 없는 배를 개발하는 만큼 투자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나머지 자금은 2027년까지 개발하기로 한 지상용 수소연료전지와 2028년을 목표로 삼은 선박 발전용 전지 개발에 투입된다.SMR 추진선은 벙커C유, 액화천연가스(LNG)와 달리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인 만큼 에너지 생산 비용도 저렴하고 유가 급등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SMR 추진 컨테이너선은 연료탱크나 배기기관 등이 필요 없어 컨테이너를 추가로 넣을 수 있다. 경제성까지 갖췄다는 얘기다.
HD한국조선해양이 개발하고 있는 선박용 SMR은 테라파워가 2030년부터 가동할 예정인 용융염원자로(MCFR)다. SMR의 한 종류인 MCFR은 상온에서 고체 나트륨을 녹인 용융염을 냉각제로 쓰는 4세대 원자로다. 연료 사용 주기가 20~30년이라 선령(선박의 연령·20~25년)과 맞아떨어지고, 원자로 크기도 작은 게 장점이다.
SMR 추진선이 조선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은 없지만 높은 가격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100~300메가와트(㎿)짜리 SMR을 지상에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조~3조원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개발하는 건 70㎿짜리지만 그래도 현재 기준으로 수천억원이 든다. 지난달 기준 1만5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가격이 2억7500만달러(약 4000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다. 상용화를 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만큼 안전성도 변수다. 선박에 문제가 생기면 발주처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선사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사업별 투자 금액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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