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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석금·거주제한' 조건 걸고 피의자 석방…불구속 재판 늘어나나

입력 2025-03-11 18:02   수정 2025-03-12 00:23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추진하는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되면 형사제도의 혁신적 변화가 예상된다. ‘기소 전 보석’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판사에게 부여해 영장 발부와 기각 사이의 중간지대가 새로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신체 구속을 최소화하면서도 포화상태인 전국 구치소의 숨통을 터줄 일석이조 효과도 기대된다. 2021년부터 논의돼 온 ‘조건부 영장제도’의 연장선에서 추진되는 이 제도는 증거 인멸을 우려한 검찰의 반대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으로 법제화가 지연됐는데 최근 들어 도입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 ‘기소 전 보석’ 선택지 가능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다양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조건부 석방제도를 설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제도는 영장 발부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은 인정하되, 일정 조건 충족 시 석방을 허용하는 ‘기소 전 보석’이 핵심이다. 보증금 납부, 주거 제한, 전자장치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등 다양한 조건 부과가 가능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 제도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적부심 단계에서만 석방 결정이 가능했지만, 새 제도는 영장 발부 단계부터 조건을 부과할 수 있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는 구속영장 청구에 ‘발부’ 또는 ‘기각’만 가능한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조건부 석방’이라는 중간지대를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불구속 수사 원칙 강화, 피의자 방어권 보장, 인권 보호 등이 강화될 것으로 대법원은 기대하고 있다. 영장판사들도 24시간 안에 구속영장 발부냐 기각이냐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제3의 선택지를 갖게 돼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을 전망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현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유죄가 확정적이고 6개월간 구금될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되면 이런 왜곡된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 증거 인멸 우려, 단계적 적용으로 해소
대법원은 검찰의 증거 인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다양한 절충안도 검토 중이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 사건은 예외 규정을 두거나, 수사 초기 10일간 구속 상태를 유지하고 공소 제기 단계에서 조건부 석방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또 전자발찌 부착, 주거지 제한 및 출국 금지, 공범 또는 관계자 접촉 금지, 정기적 출석 의무 등 사안별 다양한 조건으로 증거 인멸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구상이다.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이 현실화하면 미국처럼 ‘보석금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피의자가 내야 하는 보석 보증금이 고액이면 이를 대신 납부해주는 보석금 대출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보석금 시장이 활성화하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피의자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을 기회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과밀 구치소, 숨통 트일까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되면 수사 단계의 구속이 감소해 심각한 과밀 상태인 전국 구치소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전국 교정시설 수용 현원은 6만2981명으로, 수용 정원 5만250명을 22.3%나 초과했다. 최근 5년간 교정시설 하루 평균 수용인원은 2020년 5만3873명에서 2024년 6만1366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었다.

형이 확정되기 전 미결수가 수용되는 구치소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광주교도소는 별도 구치소가 없어 미결수와 기결수가 함께 수용되며 포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수용 정원이 1560명인 광주교도소는 재소자의 절반 가까이가 미결수다. 부산구치소는 남성 148%, 여성 227%라는 충격적인 수용률을 기록 중이다. 상황이 악화하자 부산구치소는 지난해 11월 법원과 검찰·경찰에 “법정구속과 구속영장 신청·청구를 숙고해달라”는 이례적인 협조 요청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무리한 구속수사가 구치소 과밀문제를 부추기고 있다”며 “구치소 내부에서는 시설 노후화와 과밀 수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 안전사고 우려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허란/박시온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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